‘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통해 국내 영화계의 ‘오컬트 장인’으로 자리매김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가 베일을 벗었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이미 개봉 첫날 관객 33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전작과는 다른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 감독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주목된다.
22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장 감독은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철저한 오컬트물로 흘러가던 영화를 작품 중반부 완벽히 장르를 탈바꿈한다. 영화는 후반부 한국의 근대사를 극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온다. 일제가 쇠말뚝을 통해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소재로 극은 180도 뒤집힌다. “여우(일본)가 범(한국)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는 극의 내부와 외부 모두에 적용된다. 장 감독은 “영화의 구조에서도 허리를 끊고 싶었다”며 “이런 구조가 주제를 잘 내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오컬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미스테리함과 모호함에서 오는 긴장감과 공포인데, 후반부 ‘험한 것’의 정체가 명확해지며 극은 오컬트적 요소를 잃어버리고 만다. 전작에서 장 감독이 보여줬던 것들은 극의 전반부까지만 기능한다. 물론 한 영화에서 두 가지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어떤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최민식은 “파묘는 장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무속과 풍수 등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대중적이다. 직접적인 공포 표현도 그렇게 많지 않다. 최민식은 “우리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땅을 소중히 생각하자는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이미 베를린영화제에서 외신에게 호평받은 만큼 외국에서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다.
최민식이 “우리 영화의 메시이자 손흥민”이라고 극찬한 김고은의 연기는 발군이다. 극 중반부 김고은이 펼치는 대살굿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손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동물의 피를 뒤집어쓰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김고은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이와 함께 처음으로 영화 주연을 맡은 이도현의 연기도 훌륭하다. 후반부 펼치는 이도현의 연기는 ‘검은 사제들’의 박소담을 떠올리게 한다. 최민식과 유해진의 연기는 여전히 묵직해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2년 넘게 준비한 작품인 만큼 작품 안에서 등장하는 무속신앙 등에 대한 고증도 좋다. 어릴 적 이장을 봤던 장 감독의 경험도 반영됐다. 22일 개봉. 13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