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일본 제1공장이 구마모토현에 완공돼 24일 문을 연다. 1조 엔 이상 투입된 공장의 가동을 계기로 1980년대 세계 무대를 석권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부활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일본 정부 역시 TSMC에만 11조 원에 육박하는 보조금을 쏟아붓는 등 ‘반도체 왕좌’ 탈환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23일 니혼게이자이 등에 따르면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자리 잡은 TSMC의 제1공장이 1년 10개월간의 공사를 끝내고 24일 준공식을 갖는다. TSMC는 도쿄돔 4.5개에 해당하는 약 21만 ㎡의 부지에 1조 1000억 엔(약 9조 75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제조 공장(팹동)과 사무실 건물 등을 지었다. 이 정도 규모의 공사는 통상 4~5년이 걸리지만 7000여 명의 인력이 24시간 3교대로 일하며 공사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다. 준공식에는 TSMC 창업자인 장중머우가 직접 참석하기로 했으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일본 왕실의 가코 공주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 인사가 외국 기업 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 그만큼 TSMC에 거는 일본의 기대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과 인프라 투자를 내세워 TSMC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1공장 건설에 들어간 비용의 절반가량인 4760억 엔(약 4조 2000억 원)을 조건 없이 보조했고 공장 준공에 발맞춰 인근 도로를 확장하고 JR철도를 구마모토공항과 연결하는 등 교통 인프라 체제 정비 계획도 수립했다.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으로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중국 매출이 늘고 있는 가운데 TSMC 공장 유치가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일본 정부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TSMC는 이달 6일 규슈에 제2공장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제2공장에 약 7300억 엔(약 6조 5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올해 안에 공사를 시작해 2027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1공장에서는 올해 말부터 12~28㎚(나노미터·10억 분의 1m) 반도체가 양산되지만 2공장에서는 6㎚의 첨단 칩이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40㎚ 칩 생산 수준에 머물고 있는 일본 반도체 기술 수준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TSMC 효과’는 일본 기술 기업들의 신규 투자도 이끌어내고 있다. 보도 등에 따르면 소니는 규슈 지역에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수천억 엔을 투자해 새로운 이미지센서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며 교세라 역시 2028년까지 620억 엔을 투자해 이 지역에 반도체 부품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 공장이 들어선 규슈 지역에 대해 “반도체 공장이 밀집해 한때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렸지만 일본 반도체 산업 쇠퇴와 함께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TSMC의 진출 결정이 흐름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 부흥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10조 엔에 달하는 보조금을 살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은 자칫 실패할 우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정부가 ‘경제안보’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보조금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이런 투자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