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횡사’ 공천에 ‘친문’ 핵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공천에서 배제되자 더불어민주당이 분당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당 지도부에서 비명계 입장을 대변해온 고민정 의원마저 최고위원을 사퇴해 이재명 대표가 강조해온 ‘명문(明·文)정당’은 허울뿐임이 드러났다. 비명계의 반발에도 친명 지도부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해 집단 탈당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공천 파동이 장기화하며 끝내 파국으로 치닫자 곤두박질쳐온 당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해 수도권과 충청, 부산·경남 등 격전지에서의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일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최근 공천 파동에 비명계 의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일부 의원들은 의총에 참석한 이재명 대표 면전에서 거친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친문’ 좌장인 홍영표 의원은 “총선의 목표가 윤석열 정권의 심판인지, 이재명 사당을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혁신이 가죽을 벗기는 고통을 의미한다면서 당대표는 자기 가죽을 벗기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이 대표는 의총 직후 ‘비명계의 반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당무에 많이 참고하도록 하겠다”고 짧게 답한 뒤 자리를 떴다.
당내에서는 안규백 의원이 이끄는 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가 서울 중·성동갑에 임종석 전 실장 대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전략공천하면서 계파 갈등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친문계뿐 아니라 홍익표 원내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멘토를 자처했던 이해찬 전 대표까지 임 전 실장을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직간접적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의 ‘컷오프’로 지도부가 사실상 당 안팎의 의견들을 묵살하고 공천 파동을 확산시켜 나가도 좋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고민정 최고위원의 사퇴를 두고도 ‘사실상 친명계가 고 의원을 밀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 위원은 이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위기를 지도부가 책임감을 갖고 치열한 논의를 해서라도 불신을 거둬내고 갈등 국면을 잠재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제게 돌아온 답은 ‘차라리 최고위원에서 물러나라’는 것이었다”며 “이는 민주당 중진 의원의 공개적 답변이어서 무겁게 듣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 위원이 언급한 중진 의원은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고 위원을 겨냥해 “최고위원이 당무를 거부하려면 그 전에 본인이 최고위원을 못하겠다고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비판했다. 고 위원은 ‘친명’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이 서울 은평을 경선에 참여하는 문제와 임 전 실장에 대한 공천 논의 지연 등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전날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한 바 있다.
주춤했던 탈당 행렬도 다시 불붙었다. ‘하위 10%’ 통보를 받은 박영순(대전 대덕) 의원은 이날 민주당을 탈당해 이낙연 전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미래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작금의 민주당은 ‘이재명 당 대표 1인의 지배’를 위한 사당으로 전락하고 방탄과 사욕을 위한 전체주의 집단으로 변질됐다”고 쏘아붙였다. 박 의원 지역구에는 지명직 최고위원인 ‘친명’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이 경선 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예비 후보 부적격 판정을 받은 김윤식 전 시흥시장은 이날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다고 밝혔다. 김 전 시장은 대표적 ‘친명’인 조정식 사무총장이 버티고 있는 경기 시흥을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다.
탈당 가능성을 이미 밝힌 '5선’의 설훈(경기 부천을)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고별사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설 의원은 28일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비례 위성정당 협의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에 지역구(울산 북구)를 내주게 된 이상헌 민주당 의원도 진보당 후보인 윤종오 전 의원을 향해 단일화 경선을 요구했다. 그는 28일 정오까지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