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바이오가 이번에 상장했으면 오히려 곤란할 뻔했습니다. 상장 절차가 지연되면서 기존 계획대로 신약 파이프라인을 직접 개발하기보다는 플랫폼에 집중할 때 회사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해 기업공개(IPO)를 철회하게 됐습니다.”
정두영(사진) 피노바이오 대표는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상장예비심사 철회와 관련해 “가장 큰 이유는 거래소 심사 지연으로 기술성 평가 이후 진척된 연구개발(R&D) 성과를 적정 가치로 반영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라며 “주식 시장의 불안감도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하는 대신 최적의 시점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피노바이오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최대 화두인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 강자로 꼽힌다. ADC는 암세포 표면 항원과 결합하는 항체(유도장치)와 약물(폭탄)을 링커로 연결해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차세대 항암 기술이다. 기존에 약물(페이로드) 기술에서 강점을 보였던 피노바이오가 최근 링커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키면서 ADC 플랫폼 기업으로서 한층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 정 대표의 판단이었다.
플랫폼 고객사의 수요에 맞춘 기술 개발이 링커 기술 고도화의 계기가 됐다. 정 대표는 “처음에는 우리가 개발한 페이로드에 다이이찌산쿄의 링커를 붙여 기술이전을 했지만 이후 고객사로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느냐’는 요청을 받았다”며 “페이로드를 놔둔 상태에서 링커를 바꿨더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고 진정한 ADC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개발한 ‘물에 잘 녹는’ 링커는 피노바이오 ADC 플랫폼의 가치를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정 대표는 “기존 ADC에 사용되던 링커는 기름 덩어리에 가까워 정상세포에 잘 달라붙고 독성을 유발한다”며 “우리 링커는 웬만한 지용성 페이로드를 붙여도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안전성이 뛰어나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특징은 최근 ADC 개발 트렌드와 맞닿아 확장성도 크다. 최근 애브비·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이 항암제 대신 스테로이드나 단백질 분해제 등 새로운 페이로드를 쓰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지용성 또는 지용성에 가까운 이들 페이로드는 항체에 매달기 어려워 ADC를 만드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며 “물에 잘 녹는 링커를 쓰면 항체에 붙이지 못했던 페이로드도 붙일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우수한 플랫폼 기술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마일스톤 수입을 올리면 높은 임상 비용을 들여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정 대표는 “올해 안에 파트너사로부터 수십 억 원 이상, 잘하면 수백 억 원대의 마일스톤 수입을 올릴 것이 확실시된다”며 “앞으로 몇 년간 기술료로 안정적인 매출을 일으키면 굳이 기존의 낮은 공모가로 상장할 이유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존 계획대로 IPO를 진행했을 경우 조달한 금액을 신약 개발 과정에서 다 써버리고도 자금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항체와 페이로드, 링커를 조합해야 하는 ADC 개발의 특성상 통상의 신약 개발보다 몇 배의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올해는 국가신약개발사업단(KDDF) ADC 항암제 개발 과제의 사업화도 예정돼 있어 기대감이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