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노조 지형을 양분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안에서도 이주노동자 보호론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올해 역대 최대로 들어오면서 이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관리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노동계가 정부를 향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제도와 관리 개선이 더딜 수밖에 없다.
4일 민주노총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맞춰 조합원 2110명을 대상으로 정책과제 설문(복수응답)을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50개 정책과제 중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을 꼽은 비율은 2%로 최하위였다. 1위는 59.3%를 받은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이다. 이번 설문에 따라 ‘외주노동자 권리보장’은 민주노총의 9대 정책과제에 담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노총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22대 총선정책 요구안을 보면, 7대 핵심 정책요구에 이주노동자 보호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이주노동자 보호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던 양대 노총의 활동과 비교하면 의외의 결과다. 한국노총도 총선정책 요구안에서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과 인권 존중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올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16만5000명으로 역대 최대기 때문이다. 노동자 수는 급격하게 늘었지만, 장시간·저임금 근로 여건에 처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필리핀은 작년 말 한국에 인권 문제를 우선 해결하라며 계절근로자 송출 중단을 결정한 상황이다.
우려는 근로자 사이에서 고용이 어려워지자 이주노동자를 차별해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년 말 건설노조 A지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비판하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자제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 이르렀다. 양 위원장은 지난달 2일 담화문을 통해 “현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인식으로 단속과 추방을 요구하고 공개 혐오를 하면서 갈등이 일어나 안타깝다”며 “민주노총은 이주노동자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노조와 노동운동 주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보호론은 갈수록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받는 차별과 타인이 받는 차별을 분리해 판단하는 여론이 형성된 지 오래다. 실제로 노동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와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최근 비정규직과 비노조 근로자 115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57.8%는 ‘직장이 자신에게 적당한 대우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32.2%는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차별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이 설문에 대해 직장갑질119 측은 “여전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노동 운동을 하는 동시에 조합원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양대 노총의 고민이 깊어질 상황이다. 양대 노총은 이주노동자 보호 정책 방향이 명확하다. 한국노총은 “고용허가제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 금지와 지역 제한을 받고 있다”며 “이주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어업 및 농축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조항 탓에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수십년째 실제 정책화란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조합원 사이에서 이 정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면, 양대 노총 입장에서도 정책 요구 강도를 낮추는 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