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지난해 12월 ‘2025∼2028 국방중기계획’을 공개하고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한국형 3축 체계 강화를 위한 각종 신무기 개발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 신무기에는 초소형 군사위성과 레이저 무기, 극초음속 추진체계, 자폭드론, 전자기펄스탄(EMP탄) 등 최근 현대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최첨단 무기체계가 포함됐는데, 가장 눈에 띄는 중에 하나가 ‘정전탄’(탄소섬유탄) 등의 개발이다. 유사시 적 전력 송신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정전탄은 ‘탄소섬유탄’으로도 불린다.
정전탄(또는 정전 폭탄)은 적의 전력망을 무력화하여 적 작전에 필수적인 전력 공급을 차단시킨다고 해서 블랫아웃-밤(Blackout Bomb)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고(高)섬광탄 음파무기, 초강력 부식제 등과 같이 사람을 해치지 않아 ‘탄소섬유탄’(Graphite Bomb)으로 통하기도 한다. 폭약이 없지만 그 위력은 차량이나 발전소 등 적의 주요 장비나 시설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그래서 비살상 기술·무기체계(soft-kill)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정전탄은 전도가 높은 니켈과 탄소섬유를 결합해 만든 ‘자탄(子彈) 내재 폭탄’과 유도비행키트(guided kit)로 구성되는 항공기투하용인 ‘한국형 GPS 유도폭탄’(KGGB·Korean GPS Guided Bomb) 등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살상 무기라 ‘소프트 폭탄’으로 불려
정전탄은 폭발에 의해 전기저항이 낮고 전기전도의 성질은 가진 탄소섬유의 와이어를 대량으로 방출해 발전소로부터 송전시설이나 전선로 등 전력계통의 절연을 손상시켜 전력송출 방해, 즉 정전을 유도한다. 특히 탄소 섬유가 대량으로 시설에 부착되면서 기능을 빼앗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제거하지 않으면 전력 공급을 할 수 없다. 복구에 상당 시간이 걸리고, 제거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전력을 필요로 하는 각종 활동을 방해해 적국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주는 무기 체계다.
이 원리를 적용해 전투기나 미사일 등에 탑재해 투하 또는 발사한 후 사전에 입력된 표적(전력 시설 등) 상공으로 유도해 터트리는 방식으로 공격한다. 분산 낙하하는 자탄들에서 니켈이 함유된 탄소섬유가 무수히 방출돼 송전선에 걸리게 되며 이때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려 단락현상 발생으로 기능을 빼앗는 폭탄이다. 최근에는 KGGB(재래식 폭탄에 유도키트를 장착한 유도폭탄) 키트를 이용해 사거리 증대와 함께 유도 및 타격 정확성의 신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게다가 폭약의 폭탄로 유해물질이나 소속 파편을 주위로 뿌리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아 비살상무기로 분류된다. 다만 정전에 의해 수반되는 통신 및 교통기관, 수송시설의 정지와 사회적 혼란이나 생명유지장치 등 직접적으로 인명에 관련된 장치의 정치로 예상하지 못한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다.
정전탄이 세상에 나오게 배경은 의도하지 않은 헤프닝 때문이다. 1985년 미 해군은 자군의 항공기에 위협을 줄 적의 지대공 유도무기 레이더를 무력화하기 위해 채프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이 채프탄이 인근 발전소로 날아가 전력 생산 및 공급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주변 6만 여 가구가 전기를 쓰지 못하는 정전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탄소섬유탄을 본격적으로 연구·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은 1991년 3월 미 국방부가 국가 안보전략 수립과 관련해 비살상 기술로서 적의 주요 시설을 정전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계획을 승인하는 동시에 비살상전에 관한 연구 그룹을 발족시켰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 해군은 바그다드 시 지역에 전기공급이 안되도록 관련 시설을 마비시켰다. 탄소섬유 탄두가 탑재된 토마호크 미사일로 이라크 변전소를 공격해 전기는 물론 통신설비까지 무력화한 첫 사례다.
1999년 5월에도 유럽의 코소보-세르비아 분쟁 때 ‘F-117A 스텔스 폭격기’가 탄소섬유탄인 ‘CBU-94/B’을 투하했다. 유고 전체 영토의 70% 지역에서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위력을 과시했다.
탄소섬유, 거미줄처럼 확산돼 전력망 마비
군사 전문가들은 주요 시설 복구에 7시간, 일반 시설 복구까지 20시간 이상이 소요될 만큼 가히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CBU-94/B는 미 공군과 ATK(Alliant Techsystems)사가 개발했다. 지름이 수십 ㎛ 내외의 탄소섬유가 감긴 탄소섬유결합체로 충전된 자탄(BLU-114/B)이 202개 내장된 분산탄두, 신관 및 폭발 계열로 구성됐다.
항공 자산에 의해 투하된 탄소섬유탄은 신관에 의해 목표물 상공 수 km에서 자탄을 방출한다. 분산된 자탄들은 전개된 낙하산에 의해 낙하 도중 감지장치에 의해 목표지점 수백 m 상공에서 다시 자탄신관에 의해 탄소섬유 결합체를 살포하게 된다.
탄소섬유 결합체는 147권선(coil)의 와이어(wire)형 탄소섬유로 이뤄져, 각 권선의 길이가 약 4.5km에 달해 살포시 서로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확산돼 적 전력망을 마비시킨다.
즉, 폭격기나 전투기를 이용해 확산탄 형태로 투하된 CBU-94 클러스터탄에 BLU-114를 꽉꽉 채워넣어 공중에 투하하면 CBU-94가 공중 분해될 때 자탄인 BLU-114/B에 내장된 낙하산이 전개되면서 목표물까지 접근해 전선 및 전력시설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국내에서 개발하려는 정전탄 탄체는 미 공군이 보유한 CBU-94/B와 정전탄과 동일하게 클러스터 폭탄을 탄체로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국내에서 개발된 스마트 폭탄인 KGGB와 같이 날개가 달린 유도키트를 적용해 사거리와 공격 각도를 대폭 늘린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3년 전 풍산이 공개한 컴퓨터로 생성된 이미지를 보면, 사거리가 길어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스탠드 오프형 무기 형태다. 윗면에 접힌 날개 2개와 꼬리 부분에 적어도 5개의 휩쓸린 직사각형 지느러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와 관련해 풍산의 방산기술연구원은 국과연이 주관한 정전탄 응용연구 및 시험개발을 통해 연구개발 실적과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늦어도 5년 내에 적 주요시설 전력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정전탄’ 개발과 전력화를 마치겠다는 시간표도 내놨다. 늦어도 2028년까지는 탄소섬유탄 수백 발을 공군에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