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를 직거래하는 경우에도 세금이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가입 기업의 법인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1월 RE100 가입 기업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간담회에서 가상 전력구매계약(PPA) 회계 처리를 주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PPA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업체가 직접 전기 사용자와 전력을 거래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다. 이 중 가상 PPA는 전기 실물을 사는 대신 발전사와 미리 정한 가격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사오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REC는 태양광·풍력 등으로 에너지를 공급했음을 증명하는 인증서인데 REC를 구매하는 것만으로도 신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쌓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가상 PPA 계약을 맺게 되면 시세 변동과 상관없이 정해진 가격에 REC를 사올 수 있게 된다. 환헤지 계약과 비슷한 개념이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RE100에 가입한 기업을 중심으로 가상 PPA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는 2022년 아모레퍼시픽을 시작으로 현대모비스·미래에셋증권 등이 가상 PPA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에서는 대략 20여 곳이 가상 PPA 계약을 맺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현행 규정상 가상 PPA는 별도의 회계 처리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가상 PPA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법인세 비용에 가상 PPA 거래를 반영하지 못했다. 기재부는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올해 2분기까지 발표할 계획인 가상 PPA 관련 회계기준 초안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적인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서는 IFRS재단이 발표한 회계기준안을 그대로 반영한다. IFRS재단은 초안을 발표한 뒤 각계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최종안을 공개한다.
회계 업계에서는 IFRS재단이 가상 PPA를 파생 상품으로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외환·이자율 선도와 거래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상 PPA를 통해 REC 공급계약을 맺은 기업은 REC 시장가격이 계약가를 웃돌 때 그 차액을 평가이익으로 인식하게 된다. 반대로 시장가가 계약가보다 낮다면 평가손실로 잡는다. 이후 계약이 청산·취소되는 시점에 평가손익 인식분을 한꺼번에 법인세 과세표준에 포함하는 쪽으로 세제가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상 PPA를 파생 상품처럼 회계 처리할 경우 법인세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청산 시점에 REC 시장가가 계약가보다 높으면 익금(세법상 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에 법인세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다만 시장가가 계약가보다 낮다면 손실이 늘어나서 법인세 비용이 낮아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