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수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위대한 컴백 스토리를 쓰고 있습니다. 좌절을 컴백으로 바꾸는 것, 그게 미국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진행한 첫 번째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위대한 컴백’을 강조하며 대선전의 포문을 열었다. 11월 대선을 불과 8개월 앞두고 열린 국정연설에서 그는 1시간 8분 동안 집권 1기 자신의 업적과 향후 정책 비전을 제시하며 반전의 계기를 노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AP통신 등 외신들은 전에 없이 ‘거침없다(feisty)’는 평가를 내놓았다.
미 정가 안팎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지지율 반등과 논란 불식의 계기로 삼을 것으로 관측했던 만큼 일찌감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민간인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가자지구 해안에 ‘임시 부두’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인도적 지원 규모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하마스를 공격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무고한 가자지구 민간인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압박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지상군 파병은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경제적으로는 진보 성향의 유권층을 겨냥해 ‘부자 증세’를 제시했다. 그가 이날 밝힌 법인세 최저세율 21%로 인상, 대기업 및 임원 급여에 대한 세금 감면 종료,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25%의 추가 소득세 부과 등은 대기업과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적자를 3조 달러 줄이는 게 목표”라면서 “연봉 40만 달러 미만이면 누구도 추가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 각종 보조금 정책의 성과를 소개하며 이에 반대했던 공화당을 향해 “이 돈을 원하지 않으면 누구든 알려달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내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으며, 특히 연설 초반부터 트럼프를 겨냥해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성토했다. 그는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을 “남북전쟁 이후 민주주의에 가장 큰 위협”이라며 날을 세웠다. 또 “내 전임자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지도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며 “나는 푸틴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원하지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손을 내밀었다.
낙태·이민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도 대립각을 세웠는데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복수’와 ‘품위’ 사이에서 선택권을 주며 트럼프와 대조를 이뤘다”고 논평했다. 그는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법률로 성문화하겠고 강조했다. 판례를 폐기했던 연방대법원을 겨냥해 “판사님, 여성들이 선거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주·공화 양당이 상원에서 합의했던 초당적 국경 통제 강화 입법에 협조하라고 공화당에 촉구했다. 그는 극우파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이 전달했던 불법 이민자에게 살해된 피해자 이름이 적힌 버튼을 들고 “공화당은 법안 통과를 위해 미국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고령 논란과 관련해서는 “내 나이가 되면 더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며 “연륜을 통해 민주주의와 가치를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얼마나 나이가 들었느냐가 아니라 우리 생각이 얼마나 낡았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1시간이 넘는 연설 중간중간에 농담과 애드리브를 섞으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우려했던 말실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