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에도 국내 경제를 둘러싼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수입 감소에 따른 ‘내수 부진형 흑자’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4년 1월 국제수지’에 따르면 1월 경상수지는 30억 5000만 달러 흑자였다. 지난해 5월부터 9개월 연속 흑자다. 흑자 폭은 직전 달인 지난해 12월(74억 1000만 달러)보다 줄었지만 계절적 요인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송재창 금융통계부장은 “연간 수출 실적 마감 직후인 연초에는 통상 경상수지가 줄어든다”며 “추세적으로는 양호한 흑자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강한 수출 회복세가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견인하고 있다. 1월 수출은 552억 2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4.7% 늘었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세다. 반도체 수출이 52.8% 늘어나 2017년 12월(60%) 이후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서버용 고성능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반도체 가격 상승세도 이어진 결과다. 승용차는 24.8% 늘었고 기계류와 석유제품은 각각 16.9%, 12.0% 증가했다.
수입은 509억 8000만 달러로 8.1% 감소해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했다. 문제는 수입이 줄어든 배경이다. 수입은 지난해 3월부터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한은은 그동안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을 그 이유로 꼽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022년 6월 배럴당 120달러대까지 치솟은 국제유가는 하향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12월 7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한은은 내수 부진을 수입 감소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지난해 3월 수입 감소세가 시작된 후 처음이다. 수입 추이를 품목별로 뜯어보면 내수와 밀접한 소비재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1월 소비재 수입은 -4.2% 줄었다. 지난해 7월(-12.1%)부터 7개월째 감소다. ‘고금리·고물가→내수 부진→수입 감소→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지는 내수 부진형 흑자 형태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고금리·고물가에 소비심리가 좋지 않아 수요가 줄었고 그 결과 소비재 수입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민간소비가 좋지 않다는 전망이 많아 소비재 수입도 크게 반등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1.9%에서 1.6%로 내려 잡은 바 있다.
이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 전망이 개선된 것과도 관련 있다. 지난달 22일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 전망치를 490억 달러에서 520억 달러로 올려 잡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국내 수요 둔화’를 꼽았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전망치를 상향한 가장 큰 이유는 예상보다 강한 반도체 경기 호조세”라면서도 “다만 소비 둔화 역시 예상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여 경상수지 흑자가 개선되는 상황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