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예방접종(NIP) 사업 대상인 영·유아용 결핵 예방 백신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백신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도매업체를 들러리로 세웠지만 입찰의 공정을 해할 고의가 없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GC녹십자·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보령바이오파마 등 다수의 제약·바이오 업체가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사법 리스크를 벗게 될 지 관심이다.
10일 제약 및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지난달 15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 모 한국백신판매 대표와 양벌 규정으로 함께 기소된 한국백신·한국백신판매 법인에 대한 검찰 측 상고를 “기망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앞서 1심과 2심 재판부는 한국백신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를 최종 확정한 것이다.
한국백신은 2016~2018년 정부의 BCG백신 입찰에 도매업체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국가 예산 92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한국백신 외 해당 백신을 수입할 수 있는 다른 국내 제약사가 없었고 낙찰 금액 역시 사실상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정한 추정 단가에 근접한 금액으로 결정된 만큼 부당한 가격을 형성하고 입찰을 방해할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가예방접종 사업이 경쟁입찰로 발주되는 만큼 두 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해야 유찰되지 않는다” 며 “국가적으로 시급한 사안인데 유찰이 반복되면 백신 공급이 수개월 지연되고 공급할 수 있는 업체도 한 곳에 불과하니 도매사와 함께 참여해 유찰을 피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NIP 입찰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내외 대형 제약사도 사법 리스크를 벗을지 주목된다. GC녹십자·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보령바이오파마·유한양행·SK디스커버리·광동제약 등 6개사는 2013~2019년 정부가 발주한 결핵, 자궁경부암, 폐렴구균 백신 등의 입찰에 참여하면서 담합한 혐의로 2020년 9월에 기소됐다. 마찬가지로 도매업체를 들러리로 세워 경쟁 입찰을 방해한 혐의다.
6개 업체는 2022년 2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고 항소를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나머지 업체들도 한국백신과 유사한 논리로 기소된 만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에 더해 6개 업체에 대한 항소심을 맡게 된 재판부가 한국백신 사건을 담당했던 재판부라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입찰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폭리를 취하기 위해 담합을 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국내 백신 자급률이 50%에 불과한 상황 등을 고려해 ‘1개 백신·1개 제약사’일 경우 수의계약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앞서 한국백신의 1심을 심리했던 재판부도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은 암묵적으로 입찰이 유찰되지 않도록 들러리를 세우라고 요구하거나 들러리를 세우더라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입찰의 공정성을 해하거나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면 ‘들러리 업체 관행’ 때문이 아니라 백신 제품의 특수성과 공급확약서 제도의 파급효과가 원인일 것”이라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