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악성민원 대응할 최소한 조치 '통화녹음'…공무원 보호 지침이 가로 막아

공직자 민원응대 매뉴얼서 녹음 고지 후 시작해야

"폭언 예상하고 녹음 버튼 눌러야 하나…증거 수집 어려워"

악성 민원 잦은 일부 부서 자동녹음 시행…전 부서 확대 한계

[김포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김포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과도한 민원과 신상털기로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운데, 정부의 민원 응대 지침이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응책인 통화녹음을 제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원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 조차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데다 민원인과의 마찰을 최소화 하려는 공직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악의적인 민원을 대응하는 공무원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2년 7월 '공직자 민원응대 매뉴얼'을 개정해 공무원들이 통화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폭언 대처요령을 안내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민원인이 전화로 욕설과 협박을 할 때 민원담당 공무원은 '선생님 폭언을 계속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 정확한 상담을 위해 통화내용을 녹음하겠습니다'라고 고지한 뒤 녹음을 시작해야 한다. 녹음 중에도 민원인이 폭언을 멈춘다면 녹음을 중단하고 정상적으로 응대하도록 돼 있다.



이는 민원처리에관한법률에 근거한 지침으로, 해당 법 시행령 제4조에서는 '민원처리 담당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의 예방 및 치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 가운데 민원인의 폭언·폭행 등이 발생했거나 발생하려는 때 증거수집 등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녹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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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시·군에서는 이 같은 행안부 지침 때문에 오히려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자동으로 녹음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와는 다르게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 금융사·통신사 등은 자동녹음을 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악성 민원이 잦은 일부 부서에 한해서는 자동녹음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모든 부서로 확대하기까지는 관련 지침 때문에 한계가 있다.

경기 북부 한 지자체 관계자는 "폭언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녹음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게다가 녹음을 고지하려 하면 민원인들이 전화를 끊어버려 폭언 증거를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아 비현실적인 지침이라는 볼멘 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시 관계자는 "민원인들에게 통화녹음을 고지하면 '무슨 법에 근거해 녹음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며 "공무원 대부분 전화 응대 도중 심각한 폭언을 경험해 봤을 텐데, 모든 행정전화번호를 자동으로 녹음한다고 하면 반대할 공무원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민원업무를 수행하는 중 녹음이 불가피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정부지침이나 내부훈령 등 근거 마련을 통해 사전고지 형식이 아닌 자동녹음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포=이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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