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킬러문항 배제·의대증원 등 혼란…사교육비 27조 '역대최대'

정부 사교육비 경감대책 내놨지만

입시환경 급변·공교육 불신 여전

의대 열풍에 학원 의존도 더 커져

1인당 월55만원…전년比 5.5%↑

사교육비 3년연속 최고기록 경신

교육부선 "올 정책 성과 나타날것"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입구에 교육비 안내문이 게시됐다. 연합뉴스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입구에 교육비 안내문이 게시됐다. 연합뉴스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무색하게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이 지난해 27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공교육 체계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요원한 가운데 교육부의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 배제’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 갑작스러운 수능·입시제도 개편 발표가 수험생의 불안을 부추기고 사교육 의존도를 높였다고 지적했다.



14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중고 학생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000억 원으로 전년(26조 원) 대비 4.5% 증가했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성과계획서’에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목표를 24조 2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6.9%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목표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조사 대상 학생 수가 이 기간 528만 명에서 521만 명으로 7만 명(1.3%) 감소했는데도 사교육비 총액은 되레 늘어났다. 사교육비 총액은 2021년 23조 4000억 원, 2022년 26조 원을 기록한 데 이어 3년 연속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전체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2022년과 비교해 5.8% 늘어난 43만 4000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사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만으로 대상을 좁혀보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5만 3000원으로 5.5% 늘었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3.6%)보다도 가파른 오름세다. 이번에 조사한 사교육비에는 방과후학교 비용과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교재비, 어학연수비 등은 빠져 있어 실제 가구당 체감하는 사교육비 부담은 조사 수치보다 더 클 수 있다.

사교육에 들이는 돈뿐만 아니라 사교육에 대한 수요 자체도 크게 늘었다. 전체 학생 중 사교육을 받는 학생 비중은 78.5%로 전년보다 0.2%포인트 올랐다. 학생들이 학원·과외 수업과 인터넷 강의 수강 등에 들이는 시간은 주당 7.3시간으로 전년 대비 0.1시간 늘었다.



특히 고등학교의 사교육 지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고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7조 5000억 원으로 1년 새 8.2% 급증했다. 이는 2016년(8.7%)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율이다. 월평균 사교육 비용은 49만 1000원으로 전년보다 6.9% 늘었다.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는 학생을 제외하면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74만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대비 6.1% 증가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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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는 사교육비가 매년 치솟는 이유로 공교육 불신과 대학 입시 환경 급변을 꼽았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 수업 보충과 진학 준비에 대한 수요가 많아 대입과 관련된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발표가 사교육 수요를 크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킬러 문항 배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앞으로 수능 출제 기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에 학원가를 찾는 수험생이 늘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여기에 최근 의대 열풍 속 사교육 업체들이 입시 마케팅을 고도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초등학생 돌봄 공백으로 인한 ‘학원 뺑뺑이’가 사교육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고 봤다.

송경원 녹색정의당 정책위원은 “사교육비는 돌봄과 입시 경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며 “늘봄학교는 준비가 덜 된 가운데 서두르는 측면이 있고 입시 경쟁의 원인을 해소하는 대책은 부족해 사교육비가 개선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도 “무리한 의대 증원 추진 등 대학 입시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올해 사교육비 또한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교육 당국이 지방자치단체 통합 돌봄 추진, 경쟁 위주의 대입제도 개편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올해 늘봄학교를 전면 시행해 초등학교 사교육비 증가세를 잡을 계획이다. EBS 무료 콘텐츠를 강화하고 수능 공정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중고등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방침이다. EBS는 올 상반기 초중고 수준별 맞춤 학습을 제공하는 학습 진단 서비스인 ‘단추’의 인공지능(AI) 기술을 고도화해 7월부터는 화상 튜터링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수능 킬러 문항 출제 배제 방침’으로 인한 수험생 혼란과 사교육비 증가는 일시적인 현상인 만큼 정책 효과가 나타나는 올해는 사교육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동인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지난해 6월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발표한 뒤 정책을 추진하는 단계로, 아직 그 효과가 이번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늘봄학교와 의대 정원 증원, 킬러 문항 배제 등 돌봄과 고등학교 입시와 관련한 정책들이 대부분 이달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그 성과가 올해 제대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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