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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이념에 위배" 논란속 95% 찬성…유한측 "글로벌 50위 도약위한 발판"

■유한양행, 28년 만에 회장직 부활

창업주 유일한 박사 ‘소유와 경영 분리’ 표방

100년간 회장직 유박사·연만희 고문 둘 뿐

일부 직원들 ‘회장직 신설 철회’ 트럭 시위도

이정희 이사회의장 "회장직 오를 생각 없어"

이정희(가운데)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왼쪽 두 번째) 유한양행 사장이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정희(가운데)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왼쪽 두 번째) 유한양행 사장이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한양행(000100)에 28년 만에 회장직이 부활했다. 유한양행은 15일 본사에서 열린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 직위 신설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번 회장직 부활은 그동안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유지에 따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원칙으로 운영돼왔던 유한양행을 특정인이 사유화하려는 의도라는 반발에 부딪쳤다. 일부 직원과 주주들의 반발 등 논란 끝에 회장·부회장직 직제가 회사 정관에 반영됐지만 앞으로 누가 자리에 오르느냐를 놓고 여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한양행은 유 박사의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유지에 따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운영돼왔다. 1969년 유 박사가 자녀들에게 상속을 포기하고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사장직을 물려주면서 이 같은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유 박사는 회사를 경영할 때 가족을 높은 직위에 내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인척을 배제한 채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운영을 맡겼다.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은 창립 이후 회장에 올랐던 인물이 유 박사와 측근인 연만희 고문 두 사람뿐이다.

이 때문에 이번 회장직 신설에 대해 회사 일각에서는 특정인이 회장직에 올라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회장 후보로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지목됐다. 이 의장은 2015년 21대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뒤 2021년까지 6년간 유한양행을 이끌어왔던 인물이다.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되면서 대표이사 사장 당시 맡고 있던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했다. 이번 주총에서도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임되면서 12년간 이사회에 머무르게 됐다. 전임 대표이사 사장들이 6년간의 임기 만료 후 회사를 떠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회사 내외부에서는 “회장직 신설은 창업주의 기업 이념에 위배된다” “누군가가 회사를 사유화하려고 한다” “특정인이 이사회를 장악해 회사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회장직을 둘러싼 논란은 유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급거 귀국하면서 더욱 커졌다. 유 이사는 “회장직 신설은 ‘기업은 사회와 직원의 것’이라던 할아버지 유지에 어긋난다”는 반대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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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주총회장에서도 일부 직원들은 회장직 부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직원들의 익명 모금으로 마련한 시위 트럭에는 ‘회장·부회장직 신설안 철회, 이정희 의장·재단 이사직 퇴임, 조욱제 사장 단임 임기 후 퇴임’이라는 문구가 표시됐다. 일부 주주들도 주총장에서 ‘매출액이 2조 원도 안 되는데 회장·부회장을 신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의장이 회장 물망에 오른다는데 사실인가’ ‘유한재단, 유한학원, 대주주들과 회장·부회장직 부활에 대해 사전 협의가 됐나’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조 사장은 “혁신 신약 ‘렉라자’를 개발하고 글로벌 회사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현시점에서 연구개발(R&D) 자원이 필요한데 유명한 분을 모시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며 “현재 사장이 2명, 부사장이 6명이니 정관 개정으로 직제 유연화를 하는 게 좋겠다는 법률적 조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정관 개정에 어떤 사심이나 목적이 있지 않다는 것을 내 명예를 걸고 이야기한다”며 “회장과 부회장을 두더라도 임원의 일부로 직위만 다는 것이지, 특권을 주거나 이런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회장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 이사장 역시 주총이 끝난 이후 “(회장 선임 시점은)잘 모르겠다”며 “확실한 건 나는 회장직에 오를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 끝에 회장직 직제와 관련한 정관 일부 변경 안건은 참석한 의결권 중 95%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유한양행은 앞으로 언제든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회장과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게 됐다. 변경된 정관에는 ‘이사 중에서’ 사장·부사장 등을 선임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이사 중에서’ 부분을 삭제하고 ‘대표이사 사장’으로 표기된 것은 표준 정관에 맞게 ‘대표이사’로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유한양행 측은 “직제만 개편됐을 뿐 회장 선임이 예정돼 있지 않아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공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조 사장이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며 연임에 성공했다. 김열홍 유한양행 R&D 총괄 사장도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왕해나 기자·한민구 기자·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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