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연공서열제와 지나치게 강한 정규직 고용 보호 제도, 그리고 이른 정년이 맞물리면서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를 20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중장년층 임금 근로자의 고용 불안정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KDI는 한국과 미국의 임금 근로자 간 중위 근속연수 차이를 사례로 들었다. KDI가 언급한 근속연수는 현재 직장에서 몇 년간 일했는지를 나타낸다. 노동 경직성이 강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해고가 자유로워 한 직장에서의 근속연수가 낮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분석 결과를 보면 정반대로 한국의 중장년층 고용 불안이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된다. 남성 근로자를 예로 들면 미국의 근속연수는 21세에 1년을 기록했다가 30대엔 3~5년으로 늘고 50~60대에도 10년 이상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20대부터 근속연수가 증가세를 보인 뒤 48세에 약 10년으로 정점을 찍는다. 이후 50대부터 내림세에 접어들어 60대엔 1~2년으로 급감한다. 여성의 경우 고용 불안이 더 심각하다. 30대부터 3~4년 근속연수가 정체되다 40대 들어 감소한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1년 이하 근속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봐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남성의 경우 40대에 1년 이하 근속자 점유율이 10%대로 바닥을 찍은 뒤 50대부터 증가하다 60대엔 40%대 수준까지 급증한다. 미국의 60대 이상 1년 이하 임금근로자 비중이 10% 안팎인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55~64세 근로자 중 임시고용직 비중을 봐도 한국이 3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6%)를 4배가량 웃돈다.
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선 중년 이후에도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근로자들이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고용불안정성이 높은 모습”이라며 “이는 세계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KDI는 이처럼 중장년층의 고용이 불안한 이유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있다고 본다. 과도한 임금 연공서열제와 강력한 정규직 고용 보호 제도로 인해 중장년 노동수요가 크게 위축됐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규직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근로자와 정규직 일자리에서 중도 탈락한 중장년층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이 가운데 기업 입장에선 생산성이 낮은 중장년층을 정년이 되자마자 곧바로 해고하려는 유인이 클 수밖에 없어 중장년층 고용 불안을 더 증폭하게 된다는 해석이다.
KDI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중장년층의 고용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 연구위원은 “제도의 힘보단 시장의 힘에 의한 안정성을 확대해 정년까지의 재직 비중을 높이는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며 “정규직 임금의 연공성 완화, 해고 과정에서의 예측 가능성 제고, 비정규직 보호 및 고용 안정망 강화 등을 핵심 과제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