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올해 회사채 발행액을 약 60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부채 늪에 빠진 한국전력(015760)이 지난해 말 자회사에 3조 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요청한 결과다.
21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근 이사회에서 올해 회사채 발행 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올해 1조 5000억 원 규모의 원화채를 3회 이상에 걸쳐 분할 발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채권 만기는 2년 이상 30년 이내다. 한수원은 외환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외화채 발행 규모와 시기도 협의 중이다. 발행액은 10억 달러(약 1조 3400억 원)가 유력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올해 외화채 발행액은 상반기 중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와 외화를 더하면 한수원이 올해 찍을 회사채는 약 2조 8400억 원이다. 지난해(2조 2477억 원)보다 6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탈(脫)원전 정책의 여파로 시설 투자비가 줄었던 2021년(1조 3570억 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다. 최근 10년간 발행된 연간 회사채 규모와 비교해도 최대치다.
한수원이 회사채 발행액을 대폭 늘린 것은 한전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부채가 200조 원을 돌파한 한전은 지난해 말 한수원을 포함한 발전자회사 6곳과 한전KDN에 3조 2000억 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요구했다. 한수원이 올해 한전 중간배당을 위해 마련해야 할 현금만 1조 5600억 원이다. 한수원을 제외한 발전자회사 5곳도 올 초부터 잇달아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올 2분기 전기요금이 동결될 가능성이 유력한 만큼 당장 한전 재무구조가 대폭 개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전이 올해 부채 전망치를 지난해(202조 4000억 원)보다 14조 원 이상 많은 216조 8000억 원으로 잡은 배경에도 이런 맥락이 있다. 이같은 부채로 한전이 올해부터 2027년까지 이자로 써야 하는 비용만 연평균 약 5조 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한전과 자회사들이 동반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발전자회사 6곳은 모두 재무 위험 기관으로 지정돼 기재부의 중점 관리를 받고 있다. 특히 한수원은 지난해 1~3분기에만 16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발전자회사는 모회사인 한전과 달리 회사채 발행 한도 규정도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한전 발전자회사의) 사전적 재무건전성 관리를 위해 사채 발행 한도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공사채 발행 확대에 따른 시장 교란도 우려하고 있다. 한전과 발전자회사가 AAA급 우량채를 쏟아내면 시장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한전이 지난해 9월부터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도 1~2년 전 불거진 ‘한전채 블랙홀 현상’을 고려한 조치다.
정공법인 전기요금 인상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력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 없는) 자회사 중간배당 등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땜질식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자회사 부담만 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