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깐깐한 日은행, 계좌개설도 일사천리…뤼튼 등 AI기술 파고든다

[K스타트업 '기회의 땅' 된 日]

<상> 日서 각광받는 K신기술

韓정부 인증도 인정않던 日대형銀

직접 GBC 찾아와 5곳 계좌 열어줘

팬데믹 후 각성한 日, 신성장 올인

해외기업 직접투자 900조원 목표

K기술력·성장성 믿고 경쟁적 유치

디캠프가 이달 7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글로벌 커뮤니티 행사인 '모크토크(MokTalk)'에서 한일 양국 참가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디캠프가 이달 7일 일본 도쿄에서 진행한 글로벌 커뮤니티 행사인 '모크토크(MokTalk)'에서 한일 양국 참가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2월 중순 미국 대사관 등 각국의 대사관과 대형 빌딩들이 즐비한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토라노몬힐스에 있는 한 빌딩 19층에 일본인 3명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이들이 찾은 곳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인 한국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곳이다. 이들은 일본 4대 대형 은행 중 한 곳의 행원들이었다. 이틀에 걸쳐 이곳에 입주한 한국 기업과 상담을 했고 5개사에 대해 계좌 개설을 위한 심사를 통과시켰다. 일본 특유의 폐쇄성과 보수적인 기준으로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는 해외 기업의 일본 시중은행 계좌 개설이 단 이틀 만에 이뤄진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의 매출은 물론 한국 정부의 인증마저도 인정하지 않던 일본 대형 은행이 먼저 찾아와 계좌 개설을 적극 지원했다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스타트업 업계의 평가다.



일본이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무서운 속도로 해외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각종 신산업 육성 정책에도 오랜 시간 꿈쩍하지 않아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라는 비아냥까지 듣던 일본 시장이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 이후 글로벌 경제 생태계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고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일본의 변화는 현지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미야자키 다쿠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이노베이션부 비즈니스디벨롭먼트 과장은 “전통적으로 개발에서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전주의(自前主義)를 유지해온 일본 기업들은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면서 “유능한 파트너와 연계해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일본 기업뿐 아니라 해외 유력 기업과 손을 잡고 외부의 기술과 노하우를 도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러한 인식에 따라 ‘재팬 이노베이션 브리지(J브리지)’라는 사업을 통해 일본 기업과 해외 유력 스타트업과의 비즈니스 매칭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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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본 정부는 해외 기업이 일본에 투자하는 형태가 양적으로 크지 않다고 보고 2021년 대일 직접투자 규모를 2030년까지 기존보다 2배 이상인 80조 엔(약 711조 2080억 원)을 목표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 정부는 목표치를 100조 엔(약 889조 원)으로 추가 확대하며 해외 투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다쿠 과장은 “단순한 해외 기업 유치를 넘어 일본 경제의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공격적으로 목표가 수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침체 국면에 빠져 있던 일본 시장에 ‘메기’ 역할을 할 해외 스타트업 유치를 통해 일본 경제 활성화에 자극을 주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어 “일본에는 첨단 기술을 가진 대기업과 연구소가 많고 내수 시장도 탄탄하다”며 “한국의 유망한 기업들이 일본 시장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고 일본 기업과 협업 및 일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JETRO는 2003년 4월부터 2023년 4월까지 20년간 760개 이상의 한국 기업에 대한 일본 거점 설립 및 사업 확대 관련 지원을 해왔고 이러한 지원을 통해 160개 기업이 일본 거점 설립 및 사업 확대에 성공했다. 또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인 기업들을 위한 현지 맞춤형 글로벌 커뮤니티 행사인 ‘모크토크(MokTalk)’ 4월 행사에 직접 참여해 JETRO의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대해 소개하며 한국 스타트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정하림 GBC 도쿄 센터장은 “돌다리를 오랜 시간 두들기기만 하고 건너지 않던 일본이 소니·혼다도 시작은 스타트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이제 그 돌다리를 건너려 하고 있다”며 “아직은 일본 스타트업 시장이 약하지만 해외 기업을 유치해서라도 활성화시키려는 일본 정부 정책과 맞물리면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 기관뿐 아니라 일본 내 벤처·스타트업 투자 기관들도 한국 스타트업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디캠프의 모크토크 행사에 직접 참여해 한국 스타트업에 러브콜을 보냈던 일본 최대 벤처캐피털(VC)인 글로벌브레인은 지난해 신한금융그룹 자회사인 신한벤처투자와 함께 50억 엔 규모로 한국과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전용 펀드인 ‘한일 스타트업 투자 펀드’를 조성했다. 일본 정부 기관의 등록 과정을 마치고 올해부터 투자 대상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있다. 구마쿠라 지로 글로벌브레인 제네럴파트너는 “지금까지 외국 VC와 공동 펀드를 만드는 경우가 없어 업계에서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며 “전용 펀드가 조성된 만큼 한일 간 비즈니스를 같이할 수 있는 기업들이 많이 참여해줬으면 좋겠고 우리도 개방적으로 지원을 해나갈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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