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정기주주총회가 이달 28일로 다가온 가운데 법원이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제기한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사건을 기각했다. 신주발행건은 OCI그룹과 한미그룹간 통합을 위한 필수요소였던 만큼 통합 절차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주총에서 임종윤·종훈 형제를 사내이사를 선임하는 건을 둘러싼 ‘표대결’이 남은 만큼 경영권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6일 수원지법 제31민사부는 “시기와 규모에 관해 정관에서 정한 요건에 실체적, 절차적으로 부합하도록 신주발행의 방식을 선택했다면 그 결정이 현저히 불합리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경영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며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제기한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사건을 기각했다.
올초 한미그룹과 소재·에너지 기업 OCI그룹은 각 사 현물 출자와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해 통합하는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 OCI홀딩스는 7703억원을 들여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포함해 총 27.0% 취득하고,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 지분 10.4%를 취득하기로 했다. 이에 임종윤·종훈 형제가 통합을 반대하며 한미사이언스를 상대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정관상 제3자발행의 요건 구비 △상속세 마련을 위한 사적 이익 △경영권과 지배권 강화 목적 △자금 조달의 대안 △상법 제374조 제1항 제2호 위반 △특별이해관계인의 의결권 제한 △보전의 필요성 등 7가지 쟁점을 토대로 사안을 판단했다. 우선 제3자 발행 요건에 대해서는 "채무자(한미그룹)의 차입금 규모, 부채비율, 신규 사업을 위한 자금수요, 특히 신약개발과 특허 등에 투여돼야 할 투자상황 등을 볼 때 운영자금 조달의 필요성과 재무구조 개선 및 장기적 R&D 투자기반 구축을 위한 전략적 자본제휴의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상속세 마련에 대해서는 “오로지 송영숙 등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고 다른 주주에게는 불이익의 원인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경영권과 지배권 강화에 대해서는 “송영숙 등의 경영권 또는 지배권 강화 목적이 의심되기는 한다”면서도 "경영권 방어의 부수적 목적이 있더라도 현저히 불공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보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신주 유통을 통한 거래안전 침해 우려도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외에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도 임 형제측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법원이 한미그룹 측 손을 들어주며 신주발행을 통한 OCI그룹과 한미그룹간 통합은 법적 요건을 갖추게 됐다. 다만 28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각각의 이사의 선임하는 안이 상정된 만큼 주주총회에서 경영권 분쟁의 향배가 가려질 전망이다. 법원도 신주발행의 궁극적인 합리성과 적정성은 “주총에서 이사진 선임 등의 과정을 통해 주주들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판단에 대해 임 형제 측은 “즉시 항고하고 본안 소송을 통해 재판부의 정확한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을 냈다.
한미그룹은 △사내이사 임주현 △사내이사 이우현 △기타비상무이사 최인영 △사외이사 박경진 △사외이사 서정모 △사외이사 김하일 등 6명 등을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며 임 형제 측은 주주제안을 통해 △사내이사 임종윤 △사내이사 임종훈 △기타비상무이사 권규찬 △기타비상무이사 배보경 △사외이사 사봉관 등 5명을 이사회에 입성시키려고 하고 있다.
한미그룹은 전날 임 형제를 사장직에서 해임했다. 주총 표 대결의 ‘키맨’으로 꼽히는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최근 그룹 통합에 반발하고 나선 임 형제를 지지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12.15%를 쥐고 있다. 송 회장 측은 32.23%의 지분을, 임 형제 측은 25.05%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임 형제 측은 “사적인 감정을 경영에 반영시킨 것으로 매우 부당한 경영 행위”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임 형제 측은 “해임의 사유가 회사 명예 실추라고 하는데 완전 적반하장”이라며 “오히려 현 경영진은 선대회장님이 일궈 놓으신 백 년 가업 기업을 다른 기업의 밑에 종속시키는 것이 회사 명예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명백히 설명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송 회장은 이날 ‘송영숙 회장의 결단과 소회’라는 입장문을 통해 장녀 임주현 사장을 “한미그룹의 적통이자 창업주 임성기의 뜻을 이을 승계자로 지목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두 아들의 선택(해외 펀드에 지분 매각)에는 아마 일부 대주주 지분도 약속돼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1조 원 운운하는 투자처의 출처를 당장 밝히고 아버지의 뜻인 ‘한미가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기업으로 영속할 수 있는 길’을 찾으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