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몰라 마음을 비웠었죠. 이렇게 병원에서 생일까지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지난 4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병동에서 조촐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주인공은 3주 전 이 병원에서 좌심실보조장치(LVAD·Left Ventricular Assist Device) 삽입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 중인 강윤수(65·남)씨다.
강씨의 수술을 집도한 홍준화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가 “생일을 집에서 맞이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퇴원을 못 시켜드려 미안하다"며 "(환자의 생일인 걸) 알게 된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조촐하게나마 축하해 드리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깜짝 이벤트가 마련됐다.
강씨는 10년 전 심장 혈관이 막혀 관상동맥스텐트삽입술을 받았던 환자다. 올해 초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응급으로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넣어 뚫어주는 시술을 받고 고비를 넘겼으나 심장의 펌프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다. 중증 심부전(heart failure) 상태로 심장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으나 이식 순번이 낮아 언제 수술이 가능할지 기약하기 어려웠다.
강씨의 주치의로서 딱한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던 김혜미 순환기내과 교수의 권유로 LVAD 삽입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LVAD는 강 씨와 같이 심장의 기능이 떨어져 온 몸으로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없는 심부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일종의 '인공심장'에 해당한다. 환자의 좌심실에 기계장치의 펌프를 연결하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주기 때문에 좌심실 펌프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심부전 증상이 심해 병원에서 퇴원하기 어렵지만 심장이식 순번이 낮거나 이식에 적합하지 않은 중증 환자가 대상이다.
김 교수는 “(강 씨는) 승압제 없이는 혈압이 유지되지 않을 정도라 퇴원이 어려웠지만 심장이식 이식 대기 순위가 낮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중증 심부전 환자에게 대안적 치료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좌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부터 LVAD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며 말기 심부전 환자가 수술을 받을 때 경제적 부담도 크게 줄었다. 심장은 여러 장기 중에서도 기증 사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약 없이 심장이식을 대기 중인 환자들을 위해서도 LVAD가 훌륭한 수단이 되고 있는 셈이다. 홍 교수는 “좌심실보조장치는 고령 또는 동반 질환이 많아 심장이식을 받을 수 없는 중증 심부전 환자의 치료에 적합하다"며 "공여 심장이 생기기 전까지 환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심장이식을 대기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후 호흡곤란, 피로감 등의 증상이 호전됐다. 스스로 보행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아 재활치료를 마치는 대로 퇴원할 예정이다. 강씨는 “심근경색과 함께 찾아온 심부전으로 힘든 상황에서 우연히 중앙대병원과 인연이 닿았다.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해 편히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되니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라며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해 준 의료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