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 등 각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하는 가운데 정부도 국내 투자 인센티브를 강구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감한 지원을 주문한 만큼 ‘반도체 보조금 현금 지원’ 논의가 가시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부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동향 및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추진 현황’과 ‘인공지능(AI)-반도체 이니셔티브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 등 관련 주요 기업도 참여했다. 정부와 산업계는 올 1월 민생 토론회에서 발표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에 따른 622조 원 투자, 16기 신규 팹(fab·반도체 생산 공장) 건설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정부는 메가 클러스터 내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 조성은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만큼 공공기관이 최대한 구축하기로 했다. 또 삼성전자가 2047년까지 360조 원을 투자할 예정인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는 환경영향평가 사전 컨설팅 제도를 활용하고 조성 기간을 대폭 단축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가 2045년까지 122조 원을 투자할 계획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서는 기존에 확보한 용수 27만 톤에 더해 유사한 규모의 추가 용수 공급 방안을 신속히 확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보조금 현금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도 적극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경쟁이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라고 강조하며 “전시 상황에 맞먹는 수준의 총력 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투자 인센티브부터 전면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5차 회의에서 정부가 “반도체 특화단지 입주 기업에 대한 투자 인센티브 제도 확충 방안도 지속 검토해나간다”고 밝혔지만 진척되지 못하자 윤 대통령이 추가로 주문을 내린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미국과 일본·중국이 이미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글로벌 추세를 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정부는 이달 8일(현지 시간) 대만 TSMC에 66억 달러(약 8조 9000억 원)에 달하는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당초 예상됐던 50억 달러보다 대폭 증가한 액수다. 일본 정부 역시 도요타·키옥시아·소니·NTT·소프트뱅크·NEC·덴소·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합작한 ‘라피더스’에 보조금 5900억 엔(약 5조 2700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 세계적인 보조금 경쟁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다가 그간 쌓아올린 노력이 헛일이 될까 우려된다”면서 “이미 우리 기업들이 각국의 보조금을 쫓아 이탈해버린 뒤에 도입하는 것은 만시지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이날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9대 기술 혁신 구상을 담은 ‘AI-반도체 이니셔티브’ 방안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기존 생성형 AI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범용 AI(AGI)를 비롯한 신시장 핵심 기술과 경량·저전력 AI인 소형대규모언어모델(sLLM) 원천 기술을 각각 확보하고 AI 안전 기술 개발을 통해 책임성 있고 설명 가능한 방향으로 AI 기술 발전을 이끌어갈 계획이다.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온디바이스 AI용 저전력메모리(LPDDR)에 AI 연산 기능을 적용하는 PIM(Processing in Memory) 등 AI 반도체 기술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