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BC뉴스가 로나 맥대니얼을 정치 분석가로 채용했다가 나흘 만에 해고하자 언론계 전체에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맥대니얼을 둘러싼 아우성은 2024 대선 캠페인에서 반복적으로 대두될 더 큰 이슈를 생각하게 만든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는 문제다. 요점을 간추리자면 맥대니얼은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위원장으로 활동하던 2020년 11월 공화당 지역구 관리들에게 대통령 선거 결과를 인증하지 말라고 종용했고 TV 인터뷰를 통해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았다는 허위 주장을 전개했다.
어디로 보나 잘못된 행동이다. 그러나 여러 경로를 통해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큰 거짓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다 보니 사안의 중요성에 둔감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간단히 정리해보자.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중단시키려 한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 결과 인증을 막기 위해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을 선동했고 자신의 지시를 거부한 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을 겁박했다. 한마디로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미국의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따로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1가량이 2020 대선이 불공정하고 자유롭지 못한 선거였다고 믿는다. 미국의 성인 인구 가운데 8500만 명 이상이 트럼프의 거짓말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갖도록 유도한 사람들에게는 또 어떻게 다가서야 할까? 이들 전부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 모조리 내치고 외면해야 하나? 이런 사람들이 NBC뉴스에 출연해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는 걸까? 짐작컨대 NBC뉴스 중역진이 맥대니얼을 채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지상파방송에서 미국인 8500만 명의 견해를 대변하는 합리적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맥대니얼 파문과 관련해 NBC뉴스가 처한 딜레마를 충분히 이해한다. 맥대니얼은 보수주의자나 공화당원이 아닌 반민주주의자였다. 맥대니얼은 이 나라의 헌법적 토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속성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저마다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산주의자를 자처한 정치인들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솔직히 말해 많은 공화당 지도자들은 지금 비겁한 게임을 하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의 거짓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공화당의 지지 기반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 자살행위라는 사실에 집중할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에게 반대했던 공화당 의원들과 선출직 관리들에게는 하나같이 ‘전직’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나 최악의 극단적 트럼피즘에서 벗어나려 시도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맥대니얼도 그중 하나다. 맥대니얼은 최근 NBC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이 미국의 합법적 대통령이라고 확언했다. 이 같은 정상으로의 회귀를 격려하고 고무해야 할까, 아니면 한때 음모론을 지지했던 자들을 영원히 벌줘야 마땅할까?
이제까지 트럼프를 완전히 내치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88건의 중범 혐의와 엘리트 언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을 앞서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들을 무시하는 고학력 엘리트들이 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생각에 잔뜩 열받은 상태다. 이런 판국에 대도시의 변호사 그룹이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 자격을 박탈할 기막힌 방법을 제시한다면 그의 지지자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필자가 새로 발간한 ‘혁명의 시대’에서 지적했듯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포퓰리스트 우파의 반감은 우리의 정치적 미래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대한 위협을 가한다.
자유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특징으로 하는 트럼프의 우익 포퓰리즘은 미국을 어둡고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간다. 하지만 사법적 메커니즘에 의지해 트럼프를 정치판에서 밀어내고 그의 지지자들을 ‘왕따’시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우익 포퓰리즘을 물리치는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트럼프의 우군들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진영에 상관없이 미국인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다루고 있으며 정치적 전장에서 트럼프와 맞서 그를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 우익 포퓰리즘을 이기는 정당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