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배당소득 분리 과세와 자사주 소각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를 추진하겠다”며 밸류업 관련 입법 추진을 공식화했다. 야당의 총선 압승으로 정부가 추진 중이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모멘텀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던 가운데 경제사령탑이 직접 강행 의지를 드러낸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21일 기재부에 따르면 최 경제부총리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진행된 국내 기자단 간담회에서 “배당을 확대한 기업 주주의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분리 과세하겠다”며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 노력을 늘린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세액공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여소야대 구조하에서 입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는 “구체적 내용에서는 이견이 있더라도 (밸류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야 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다.
정부가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도 배당소득 분리과세 추진을 밝힌 것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분리과세가 도입되면 배당소득은 금융소득종합과세(최고세율 45%)에 합산되지 않아 배당소득자들의 납세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최 부총리는 “가계 금융자산이 자본시장을 통해 생산적인 부분으로 흘러가는 것이 경제 선진화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개인투자자 비율이 높은 데다 (밸류업에 대해) 반대 여론이 두드러지지도 않는다”며 “배당 성향을 높여 주주 환원하는 것이 밸류업의 핵심인데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인책 중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주주환원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떨어진다는 점에서 밸류업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KB증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 사이 한국의 배당 성향과 자사주 매입률을 더한 주주 환원율은 29%인데 미국은 92%에 달했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의 주주 환원율은 68%로 나타났다. 중국의 주주 환원율 역시 32%로 한국보다 높았다.
최 부총리는 이날 모든 분야의 예산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여야가 총선 승리를 위해 무분별하게 쏟아낸 공약에 대해 검증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치권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재정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최 부총리의 판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야당은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냈고 정부도 민생 토론회로 발표한 정책이 상당하다”며 “(원점 재검토를) 매년 하는 원론적 발언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실제 최 부총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 국민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제도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부정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꽤 있었다”며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최 부총리는 여당 공약이었던 저출생 특별회계에 대해서는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최 부총리는 또 공공요금 방향에 대해 “물가 상황을 고려할 때 당분간 현재의 기조(동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2%대 물가를 빨리 볼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야당이 제안한 추경에 대해 “근시안적 시각”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이 총재는 19일(현지 시간) 워싱턴DC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3% 수준”이라며 “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국가부채를 생각해 보면 20년 내 이 숫자가 70%, 90%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숫자만 보고 재정의 건전 상태를 파악해서 ‘여유가 있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재정을 쓰더라도 어려운 계층에 먼저 쓰는 등 우선순위를 잘 가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환율과 유가 동향에 대해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확전하지 않을 경우 상황은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원화 절하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미일 재무장관회의에서 이런 의견을 공유해 환율이 안정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처럼 석유 소비량이 많은 나라는 중동 사태가 어떻게 될지에 따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며 “더 확전이 되지 않는다면 유가는 크게 올라가지 않고 환율도 다시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