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종이컵

유계자





딱 한 번 뜨거웠으면 됐다




딱 한 번 입맞춤이면 족하다

딱 한 번 채웠으면 그만이다

할 일 다 한 짧은 생

밟히고 찌그러져도 말이 없다



딱 한 번 뜨거웠던 제 몸의 온도를 전해주고 갔구나. 딱 한 번뿐인 입맞춤을 허락하고 갔구나. 딱 한 번 채웠던 소중한 걸 다 비워주고 갔구나. 하루에도 두세 번씩 다른 종이컵과 입 맞추는 날 무심히도 바라보았었구나. 커다란 입으로 말도 없이, 밟히고 찌그러지다가 사라졌구나. 딱 한 번으로 할 일을 다 했다니 얼마나 간명한 생인가. 내일도 뜨겁고 싶고, 모레도 입맞춤하고 싶고, 글피도 채우고 싶은 내 앞에, 오늘도 딱 한 번 뜨거운 종이컵아.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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