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IN 사외칼럼

푸른 5월, 밖에 나가 한편의 글을 써보자 [조은서의 문화가 있는 삶]

■조은서 서강대 미디어&엔터테인먼트학과 2학년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현대인이 연필을 잡고 한 글자씩 정성을 담아서 글을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일주일에 한두 시간은커녕, 한 달에 몇 번 기회가 있을까 말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펜과 노트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경우가 드물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문자를 통한 소통을 진행해왔다. 그 많은 시간과 기록이 축적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여러 문자와 언어 중 한글은 엄청난 장점과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조합할 수 있는 단어의 개수와 발음의 편리성까지 지니고 있고,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말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낮기로 유명하다. 한글로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은 실로 감사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맹률과 다르게 해가 지날수록 문해력과 관련된 논란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문해력(文解力)이란 글을 풀어가는 힘을 말한다. 즉, 단순히 문자 자체를 읽고 쓰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며 더 나아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문해력을 기르는 힘은 결국 글을 자주 읽고 쓰는 것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렇지만 실상은 글을 쓰기는커녕 읽거나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대신 글을 작성해 달라는 작업을 요청하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AI가 쓴 글은 좋은 글로 보일 것이다. 사람이 읽었을 때 ‘잘 썼다’라고 생각하는 글들을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했기에 AI가 만들어낸 글은 사람이 쓴 글보다 더욱 완벽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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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글’은 의사 표현의 수단이자 동시에 성찰의 수단이며, 타인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로는 이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도 할 것이다. 사람을 위한 ‘글’ 쓰기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들, 그 과정이 생략된 단순한 결과물에는 의미를 어떻게 부여해야 할 것인가? 단순히 글쓰기는 결과물만이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과정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일 것이다. 처음 인류가 문자를 만들었던 이유를 떠올려보자. 그 간절함을 바탕으로 기록을 위한 용도이건, 공부하는 용도이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떠한 ‘목적성’을 지니는 사람의 행위였다. 이를 돌이켜보면, 인류가 작성하는 글은 참으로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것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 모두 성찰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해온 것이다.

정보화와 AI의 활용이 가속화될수록 사람은 인류를 이루고 있는 그 본질에 대해 떠올리는 기회를 얻기 어렵다. 그리고 그 가치는 과소평가되기 마련이다. 당장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의 기반을 다지는 행위에 대해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위에도 그 빛이 하나씩 드러날 것이다.

한 방향으로만 계속 달리다 보면 그 반대 방향에 달리고 있는 대상을 잃어버리기 쉽기에 더욱 의식적으로 그 반대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말, 푸른 5월에 펜 한 자루와 종이를 가지고 무작정 나가보자. 그리고 본인의 감정과 기분을 써 내려가 보자.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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