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며 엔·달러 환율이 29일 장중 160엔대까지 치솟았다. 엔·달러 환율 상승은 엔화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이날 엔·달러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한때 160.17엔까지 올랐다. 환율이 160엔 선을 넘긴 것은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이다. 오전 160엔대를 찍었던 환율은 오후 들어 154.54엔대로 꺾이는 등 급격한 가격 변동을 보였다. 닛케이는 “일본이 ‘쇼와의 날’로 공휴일을 맞아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거래 주체 자체가 적었다”며 “통화 당국의 환율 개입 경계감이 커지며 시세가 크게 흔들리기 쉬운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160엔대에서 154엔대로 꺾인 변동성을 놓고 시장에서는 “엔화를 되사는 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격한 엔고, 달러 약세가 나타났다”며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시장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간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은 “지금은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꼈다.
올 1월 초 140엔대에서 움직이던 엔·달러 환율은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 등으로 강달러가 연출되며 2월 들어 150엔대를 돌파했다. 3월에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해제를 발표했으나 기준금리 인상이 기존의 -0.1%에서 ‘0~0.1% 유도’로 소폭에 그쳐 미일 금리 차를 노린 엔화 매도세를 부추겼다. 심리적 1차 저항선(152엔)에 이어 2차 방어선(155엔)까지 뚫은 엔화 값은 이달 26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금리 동결 후 “엔화 약세가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다”고 발언하면서 158엔대를 터치했다. 여기에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들이 잇따라 강세를 보이며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개입 방어선을 훌쩍 넘은 만큼 그간 구두 개입에 그쳤던 통화 당국이 ‘엔화 매수, 달러 매도’ 등 직접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최근 엔저의 근본 원인이 미국의 경제 호황 및 고금리 지속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화 당국의 개입 효과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엔은 이날 유로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며 한때 유로가 유럽에 도입된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유로 당 171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