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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우리가 있었다…노기훈이 사진으로 살려낸 도시의 생명력 [아트씽]

[류지연의 MMCA 소장품 이야기(1)]

고향 구미의 역사와 현재 담은 노기훈 작가

퇴근시간 기다리는 석양 아래 '옐로 데이즈'

사진으로 기억해 내는 도시…경험의 공유

노기훈 '옐로 데이스-기숙사' 99×124cm, ed 1/5, 2016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노기훈 '옐로 데이스-기숙사' 99×124cm, ed 1/5, 2016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노기훈의 ‘옐로 데이스’는 고향 구미를 오랫동안 촬영한 작품이다. 작가는 구미 시의 핵심이 공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도시구조와 역사를 바탕으로 그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주목했다. 구미의 도시계획과 발전 양상은 공단의 형성과 산업의 변화와 동일시되는데 작가가 2010년대 전후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도시민의 70% 이상이 30대 이하 젊은 층이면서 남녀 성비에 있어서는 여성 비율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작가의 친구 대부분은 여자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성인이 되어 무엇보다도 익숙한 구미의 공장에 취업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전국 각지에서 유입된 20대 초반 친구들은 각자의 미래를 꿈꾸며 구미를 스쳐지나간 것이다. 이에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서 타 지역과 다른, 구미 만의 특성을 발견했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기훈 '옐로 데이스-신지원과 홍선희', 종이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24x99cm, 2009년, ed 1/5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노기훈 '옐로 데이스-신지원과 홍선희', 종이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24x99cm, 2009년, ed 1/5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2009년부터 작가는 구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TV와 핸드폰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들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공장을 떠났고 그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워갔다. 작가는 이러한 근로조건 속에서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는 오후 4시에 비로소 바깥 공기를 쐬는 친구들이 보았음직한 불그스름한 석양 아래 시공간에 주목하여 작품의 시리즈를 노란 나날들이란 뜻의 ‘옐로 데이스’로 명명했다.

사진 속 시간과 장소는 인물과 관련된 시간과 장소이다. 작가는 대학생활과 작가로서의 활동을 위해 타지에서 자주 체류했지만 그는 여전히 구미에 가족과 작업실을 두고 있으며 오랫동안 구미의 한 회사에서 파트타임직으로 일하기도 했다. 따라서 작가가 포착한 구미의 모습은 스스로의 성장을 담고 있으면서 도시의 성장과 발전, 산업화 속에서 자칫 묻힐 수 있는 다양한 인간상과 그들이 만들어 낸 환경에 대한 일기와도 같다.

노기훈 '옐로 데이스-언덕', 종이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24x99cm, 2017년, ed 1/5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노기훈 '옐로 데이스-언덕', 종이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24x99cm, 2017년, ed 1/5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도시의 생명력은 사람으로부터 비롯해 공간으로까지 확장돼 나간다.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작가의 고향 구미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사진 작업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물들을 예쁘게 보이거나 공간을 잘 꾸밀 필요가 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사진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그의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만들어낸 총체적인 삶의 재현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이 구미 지역의 2번 도로를 다룬 시리즈로 시작했던 만큼 그에게 구미는 창작의 원천인 곳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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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작가는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4기 입주작가로 선정돼 인천 구도심에서 체류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그 결과 자주 이용했던 서울-인천간 1호선을 배경으로 26개역의 인간군상, 일상 그리고 풍경을 다룬 도큐먼트 작업인 ‘1호선’(2013~2016), 백령도를 3박4일 동안 걸어서 10m 간격으로 사진을 찍은 ‘백령도’(2013)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러한 작업은 모두 ‘옐로데이스’에서 보여주었던 지역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확장해 나간 작업들인데 최근에는 보다 실천적인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2013년도 이래 자주 드나들었던 인천 구도심에 사진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했다. ‘사진의 도서관, La Biblioteca de Foto’, 축약해서 LBDF라고 명명한 사진 전문 도서관은 물질로서 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플랫폼이다. 이용자들은 도록, 책 등 종이를 기반으로 사진을 접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강의,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사진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접점을 찾아내는 대안적 공간이다. 공유공간의 형태로 운영되는 ‘사진의 도서관’은 그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사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사용자들, 나아가 인근 주민들과 함께 나누면서 축적하는 장이기도 하다.

이렇듯 일상에 대한 작가만의 기본적인 태도를 확립하게 해준 ‘옐로 데이즈’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한창인 ‘MMCA사진소장품전;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에 출품됐다.

노기훈 '옐로 데이스-방진망' 종이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24x99cm, 2013년, ed 1/5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노기훈 '옐로 데이스-방진망' 종이에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124x99cm, 2013년, ed 1/5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노기훈 : 1985년 구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학사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 사진학과에서 순수사진전공으로 석사 졸업했다. 광학 기기가 매개하는 예술의 형식을 통해 역사적인 현실의 풍경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특수한 지역과 지리적 경로를 설정하고, 이러한 경로를 축으로 다양한 대립과 분열이 공존하는 현재 사회상의 시원을 더듬어 찾아 나감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들을 찾아간다. 동시에, 사진 매체가 크게 변모하고 대중화된 동시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유효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능성과 방향성을 고민하며 일종의 미술 형식으로서의 사진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사진 매체와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형태가 비물질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별 이주를 실험하는 과정으로 ‘사진의 도서관(LBDF·LA BIBLIOTECA DE FOTO)’을 운영 중이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장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장


▶▶필자 류지연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장이다.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전시기획, 미술관교육, 소장품연구, 레지던시, 서울관·청주관 건립TF 등 미술관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29년째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에식스대학교(Essex University)에서 미술관학(Gallery Studies)을 공부했으며,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겸임교수(2022~2023)를 비롯해 인천시립미술관·대구미술관 자문위원, 서울문화재단 전시 자문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자문위원, 성북문화원·대안공간 공간291 지문위원, 증도 태평염전 아티스트 레지던시 심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아트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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