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에 대해 알아 보자. 기타(guitar)의 지판(fingerboard)에는 음높이를 결정하는 줄받침(fret)이 고정된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조율은 음높이를 정하는 일이다.
기타의 줄길이가 ‘90cm’라고 하자. ‘90cm’의 개방현이 ‘도’ 음을 낸다면 ‘레’는 ‘10cm’를 줄인 곳에 프렛을 설치해 ‘80cm’를 진동시켜 낸다. 줄길이의 비례는 ‘9:8’이고 진동수비는 ‘8/9’다. ‘레-미’의 줄길이 비례는 ‘10:9’이므로 ‘80cm’에서 ‘8cm’를 줄인 곳에 프렛을 설치한다. 그러면 ‘미’ 음을 들을 수 있다. 개방현인 ‘도’와 ‘미’의 실제 줄길이가 ‘90cm’와 ‘72cm’이므로 비례는 5:4다. (줄길이 비례는 ‘:’로 진동비는 ‘/’로 표시한다.)
‘도-레-미-파’가 ‘8/9, 9/10, 15/16’의 진동비이듯이 ‘솔-라-시-도’도 같은 비례로 조율된다. 그리고 아래 ‘도-파’와 위 ‘솔-도’가 연결되는 ‘파-솔’의 간격을 ‘8/9로 설정하면 순정조(just intonation)가 완성된다.
여기서 비례로 사용된 숫자들이 2, 3, 5와 그 배수들임을 알 수 있다. 진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수 배의 진동들이다. 이를 배진동이라고 한다. 배진동을 이해해 보자.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 옆에서 그네를 밀어 준다고 하자. 한번 왕복에 한번, 두 번 왕복에 한번 밀어 주어도 된다. 세 번에서도 한 번이다. 힘의 공급수와 그네의 진동수는 배수 관계다. 기타의 줄이 1초당 100번 진동하면 줄이 묶여 있는 악기의 어느 한 부분은 이 힘의 공급을 받아 200, 300, 400번…의 진동을 만들 수 있다. 모든 진동은 정수 곱이 되는 진동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음악에서는 이를 배음(overtone)이라고 칭한다.
순정조는 2, 3, 5의 배진동을 이용해 음계를 조율하는 반면, 피타고라스조는 2, 3 배음만을 사용한다. 순정조의 ‘레-미’인 ‘9/10’에는 5의 배수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9/10’을 ‘8/9’로 대체한다. ‘도-레’와 ‘레-미’를 ‘8/9’로 조율하면 피타고라스 조의 ‘미-파‘가 남게 된다. 피타고라스의 ‘미-파’는 순정조보다 좁은 ‘243/256’ 이다. ‘3’과 ‘2’의 배수들이다. ‘cent’ 단위로는 90이다. ('cent'는 지수함수를 이용해 곱셈을 덧셈으로 하는 음정 단위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조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현악합주에서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의 3화음 연주에는 순정조 조율이 적격이다. 세 음의 진동 비례인 4:5;6은 모두 ’1‘의 ‘overtone’들이므로 좋은 울림을 만든다. 한편, 바이올린은 ‘시’에서 ‘도’로 멜로디를 끌어 올릴 때, 간격이 좁은 피타고라스 반음을 선호한다. 그러나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에서 문제가 생긴다.
건반악기를 순정조로 조율할 경우, ‘c-d’ 사이는 ‘8/9’(204)이고, ‘d-e’ 사이는 ‘9/10’(182)이다. 따라서 ‘c’와 ‘d’를 ‘도-레’로 사용하는 C 장조의 연주는 가능하지만, ‘d’와 ‘e’를 ‘도-레’로 사용하는 D 장조의 연주는 불가능하다. 해결책으로 204와 182의 중간 값인 193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진동수 비례를 계산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간이라는 느낌의 음높이를 찾는 조율이었을 것이다. 이를 ‘중간음 조율’(mean tone system)이라고 칭한다. 중간음 조율의 건반에서는 서너 개의 조를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게 된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발전하면서 모든 조를 옮겨다닐 수 있는 조율이 요구된다. 중간음 조율을 넘어서서, 반음이 두개 모이면 온음이 되는 조율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옥타브를 12개의 똑 같은 크기로 조율하자는 요구다. 열두 번 곱해서 2가 되는, 즉 2^1/12의 값을 구하는 일이다. 여기서 이 값의 숫자를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센트 값으로 말하면, 100 센트의 크기다. 모든 반음은 100, 모든 온음은 200센트이다.
이것이 평균율 조율이다. 유럽의 조율이 2의 12승 근을 찾았듯이 아랍의 음악은 2의 17승 근, 또는 19승 근을 찾았었다. 튀르키에의 한 조율 연구자는 그 값을 찾아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무리수의 개념이 없었으니까 분수로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과장된 이야기이겠지만, 그의 아들 손자까지 3대를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평균율은 옥타브의 열두 음들이 평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옥타브 내의 여러 음들은 자연 상태에서 평등하지 않았다. 어떤 음은 “사장”(으뜸음)이고 어떤 음은 “지배인”(딸림음)이었으며 멜로디의 진행에서도 음들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있었다. 이 관계는 음계의 음 관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평균율 조율은 음들 간의 계층성을 포기한다. 각 음들은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 것이나 다름 없다.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가 구현된 셈이다. 평균율과 민주주의를 비교해 보자. 누구나 한 표씩 구사하는 권리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한 표씩이었을까?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영국은 귀족과 납세자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투표지의 수도 달랐다. 부자는 두 세 장의 투표지를 받았다.
스위스에서 여성 참정권은 1959년 남성들만의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표 차로 부결되었고, 1957년 불어 사용 지역이 여성 참정권을 선언한 후, 60년대에 이르러 여성이 투표를 했으며, 전국의 여성 투표는 1971년에 이루어진다. 한국의 상황을 보자. 한국은 1948년 5월 총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으로 남녀평등, 1인1표 제도가 시행된다. 놀라운 일이다. 그후 정치의식과 윤리의식은 빠른 경제성장을 따라 잡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어려운 현실이 중진국 진입 후 출생한 세대들의 “원래부터 이 정도 잘 살았지!”하는 무관심과 자만 때문인지, 아니면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는 세계사적 진리 때문인지? 헷갈린다. 초등 1년생이 얼떨결에 전교 1등을 한 뒤, 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아닌지? 어떻게 하겠나, 이해해야지. 이것이 지금 한국의 상황일까? 평균율을 설명하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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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