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대한민국,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겁니까?’라고 물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이 더 이상 미뤄지면 우리나라 전체가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대한상의 회장 연임 기념 기자 간담회를 열고 “지금 우리 사회가 저성장에 직면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면서 이처럼 지적했다. 최 회장은 올 3월 임기 3년의 상의 회장에 재선출됐다.
그는 이날 ‘22대 국회 총선이 다시 한번 여소야대 국면으로 가게 돼 상속세 개선 등 기업 관련 법안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질문에 “원래(21대)도 여소야대여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본다”면서도 “우리가 과거에 해왔던 대로 계속해서 가도 이 대한민국이 괜찮은 건지 전 사회에 한번 퀘스처닝(질문)을 해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반도체·전기차 등 성장 산업에 대해 전 세계 정부가 직접 경쟁에 뛰어들고 저출산·저성장 등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 다가오고 있어 정부나 기업 모두 기존 방식대로는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는 “여태까지 해온 대로 가도 좋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우리 경제계도 따라가야겠지만 뭔가 새로운 모습이 필요하다면 대안들을 두고 국회나 정부·시민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론으로는 커다란 사회문제들을 해결해나갈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했다.
최근 호조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 경기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반도체 산업에서 과수요를 보이는 바람에 올해 경기 둔화의 반사 효과가 나타나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듯한 현상을 띠고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롤러코스터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올 들어 좋아진 반도체 경기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최 회장은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해 황 CEO와 면담했다. 최 회장은 “황 CEO와는 원래 잘 알던 사이로, 자주 만나는 관계”라며 “자신들의 최첨단 칩이 빨리 나올 수 있게 연구개발(R&D)을 서둘러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어 최근 반도체 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정부 보조금에 대해서는 반도체 산업의 구조가 달라지고 있어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그는 “과거의 반도체는 기술 발달에 따라 미세화가 진행되면서 시장에서 필요한 수요를 충족시켰는데 지금은 기술로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워 설비투자(캐펙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전 세계에서 보조금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캐펙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점점 더 큰 숙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나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SK그룹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투자를 해야 하지만 점차 요구되는 투자 규모가 커지고 있어 기업의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서 미국 정부는 인텔에 보조금과 대출을 합쳐 총 195억 달러(약 26조 50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그는 반도체 보조금이 투자에 어느 정도 유인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을 하기 위한 각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여러 가지 여건이 미비한 나라와는 상황이 다르고, 또 나라마다 사정도 다르다”며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현재 우리 정부가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한편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하는 상의 회장으로서의 소임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해소해 기업 활동에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기업 활동에 도전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