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만파식적] 처분적 법률






법은 일반성과 추상성을 띤다. 불특정 다수와 불특정한 상황을 규율한다는 의미다. 법이 만들어지면 행정·사법의 절차를 거쳐 특정 사례와 특정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법의 일반적 성격에 반하는 것이 ‘처분적 법률’이다. 이는 행정·사법적 절차 없이 직접적으로 특정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킨다. ‘조치’와 ‘입법’을 결합한 ‘처분적 법률’이라는 개념은 독일 법학자들이 발전시킨 것이다. 입법을 통해 즉각적인 조치, 즉 행정처분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처분적 법률은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법률만으로는 과거에 없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은 입법권 남용의 소지를 안고 있기에 공익적 가치가 큰 사안에 대해서만 헌법에 입각해 예외적으로 도입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한 5·18특별법이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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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처분적 법률을 동원해 전 국민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앞서 신용사면 등에 대해 “처분적 법률을 활용하자”고 제안하자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 “22대 국회 1호 입법으로 전 국민에 대한 25만 원 지급을 추진하겠다”고 호응했다. 정부가 반대하는 정책들을 입법을 통해 ‘행정부 패싱’을 하고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초헌법적인 발상이다. 헌법 54조와 57조는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 다수당이 국가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13조 원의 예산이 드는 ‘돈풀기 입법’을 정부의 뜻에 반해 추진한다면 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그 어떤 법률도 헌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넘어 ‘처분적 법률’이라는 개념까지 동원해 위험한 영역에 발을 내딛고 있다.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에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해도 좋다는 허락까지 내준 것이 아니다. 법률가인 이 대표가 마치 신박한 아이디어를 낸 것인 양 그럴싸한 법률 용어를 써가며 위헌적인 입법권 남용을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은 국민을 현혹하는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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