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가 연금 개혁안 합의 불발을 선언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아직 21대 국회 임기가 21일 남았다”며 연금 개혁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대 국회로 넘길 경우 수년간 제대로된 논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특위 임기 내에 연금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 역시 지난 36년 동안 한 차례도 올리지 못한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이 연금 개혁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여야가 합의안을 만들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8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연금 개혁 논의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국회에서도 더 논의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여야가 소득대체율 이견을 2%포인트 차까지 줄인만큼 충분히 개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 역시 “지난해부터 논의를 이어와 이제 의견차를 이렇게까지 좁혔는데 여기서 멈춘다는 것이 말이 되겠느냐”며 “보험료율을 올리는 데는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했으니 한 발짝은 내딛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7일 연금개혁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특위 활동은 종료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초 여야 연금특위 간사와 연금 공론화위 자문위원 등은 8일부터 함께 5박 7일 일정 출장을 떠나 연금 개혁안 협상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출발 전날 돌연 출장 취소와 함께 합의 불발을 선언했다. 협의 막판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3%, 더불어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5%를 주장했으나 끝내 합의에 다다르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 모두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데 동의했으나 2%포인트 차이의 소득대체율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대로 21대 국회에서 개혁이 좌초될 경우 사실상 수년간 연금 개혁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것으로 전망된다. 22대 국회가 6월 개원하지만 거대 야당이 상임위원장 독식을 예고하고 있어 원구성에만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국회가 구성돼도 법안 발의부터 특위 구성, 공청회 등 처음부터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게다가 22대 국회 임기 중에는 굵직한 선거 일정도 잇따라 예정돼있다. 2026년 6월에는 지방선거가, 2027년 3월에는 대선을 치러야 한다.
연금 재정은 이미 비상이다.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 수입과 수급자들이 타가는 연금 지출을 비교한 ‘보험료 수지’는 2027년부터 적자로 전환할 예정이다. 한동안은 기금 운용수익이 적자를 매우지만 2041년부터는 이마저도 부족해 기금을 헐어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후 기금은 2055년께 고갈된다. 저출생이 가속화되고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갈 시점은 더울 빨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힌목소리로 21대 국회가 연금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보험료율인 9%가 충분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에는 너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40%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19.8%, 소득대체율 50%에 대한 수지균형보험료율은 24.8%다. 지금은 필요한 비용의 절반도 내지 않는 ‘적자 상품’인 셈이다. 연금 제도가 성숙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연금 보험료율은 18.2%, 소득대체율은 42.3%다. 인구구조를 고려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 구조다.
보험료율 정상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인구 비중이 높은 60년대생들이 수급개시연령에 모두 진입하기 전 경제활동인구가 정점일 때 보험료율을 높여야 보다 적은 비용으로 재정안정을 달성할 수 있어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에 직면한 국가 중 연금개혁을 해내지 못한 나라는 한국 뿐”이라며 “이번에 조금이라도 모수 개혁(보험료율 인상)을 해야 나중에 추가 개혁을 통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의견 차가 아주 좁은 범위로 좁혀진 것 아니냐”며 “소득대체율이 43~45% 수준이면 개혁을 1년 미루는 것보다는 지금 하는 것이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여야 양측이 논의 중인 협상 범위에서는 어떤 방안을 선택하더라도 2093년 기준 누적적자가 대폭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소득대체율을 1%포인트 올릴 때 보험료율을 2%포인트 올려야 재정 전망이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야 양측 모두 보험료율을 13%로 현행보다 4%포인트 올리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이 43%일 경우 누적적자는 4318조 원 줄어든다. 소득대체율이 45%면 2766조 원 감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