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럽 순방의 종착지인 헝가리를 찾아 양국 간 협력 수준을 격상하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는 등 동유럽 밀착 행보를 이어갔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9일(현지 시간) 부다페스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과 헝가리는 전천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돼 협력 수준을 더 높게 발전시킬 것”이라며 “무역·금융 등을 비롯한 경제적 유대를 더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두 정상은 에너지, 인프라 등 18개 분야에서 협정을 체결했다. 사업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철도와 도로, 원자력 발전, 자동차 등의 협력 사업이 담긴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연합(EU) 차원의 대(對) 중국 견제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오르반 총리는 중국에 대한 굳건한 지지 입장을 강조했다. 한 소식통은 오르반 총리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헝가리는 소위 ‘과잉 생산’이나 ‘디리스킹(위험 제거)’이라는 개념을 중국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며 “중국과 협력을 심화하겠다는 헝가리의 의지는 확고하며 어떤 힘에도 간섭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EU 국가인 헝가리의 이같은 태도는 중국과 관계에서 얻고 있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에 기반한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헝가리의 투자 프로젝트에 160억 달러(약 22조 원) 이상을 투입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로 부상한 중국 비야디(BYD)는 헝가리 남부 도시 세게드를 첫 유럽 공장 부지로 선정했으며 배터리 업체 CATL은 78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 창청자동차(GWM) 역시 헝가리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헝가리와 세르비아를 잇는 철도 사업에도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헝가리는 EU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계약을 체결한 국가이기도 하다. 오르반 총리가 이날 “헝가리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에 공정한 조건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하자 시 주석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헝가리의 경제 개방 전략은 매우 일치한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과 오르반 총리는 안보·외교 사안을 놓고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과 관련해 “즉각적인 휴전과 평화 회담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지하며 시 주석이 제시한 중국의 평화 계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지난해 2월 발표한 평화 계획은 휴전을 촉구하면서도 러시아군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하지 않아 미국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평화 구상과는 거리가 있다. 시 주석은 “헝가리는 중국과 EU 관계 증진에 있어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