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민간인 학살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된 ‘반(反)이스라엘 정서’가 대학가를 휩쓰는 것을 넘어 미국 전역을 갈등과 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의 개인 신상 정보가 온라인에 공개되는 등 ‘좌표 찍기’ 공격이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친(親)팔레스타인·친이스라엘 성향의 인사들이 각자 목소리를 내며 사회 전반에 균열을 내고 있다. 미국 내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반이스라엘 정서가 형성된 셈이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라파 공격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고수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1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친이스라엘 성향의 웹사이트 ‘카나리아 미션’이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한 250여 명의 학생 및 교사의 이름과 주소, 얼굴, 과거 행적 등의 신상 정보를 공개해 이들이 ‘온라인 좌표 찍기’와 같은 괴롭힘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를 퍼뜨렸다”는 이유에서다. 로이터통신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교수들이 안전과 학문적 자유를 위협받고 있지만 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또 카나리아 미션과 비슷한 공격 방식을 갖춘 친팔레스타인 단체도 등장해 이번에는 ‘친이스라엘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의 신상을 털면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이스라엘 시위가 대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가운데 세대·계층 간 갈등 양상도 감지된다. 억만장자이자 모교인 하버드대에 거금을 기부했던 켄 그리핀 시타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공연 예술에 가깝고 이런 초현실적인 시위는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을 실제로 돕고 있지도 않다”며 “(과거라면) 이런 위기에서 미국인들은 식량 모금과 같은 실질적 도움에 집중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가 건물을 습격하거나 파손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정부 상태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9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역시 미 MSNBC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젊은이들이) 중동 역사에 무지하다”며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우리가 틱톡 등에서 보고 있는 것 중 다수는 고의적인 거짓이자 믿을 수 없이 편파적인 내용”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미국 내 반이스라엘 정서가 어느 때보다 깊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라파 지상전 감행에 고삐를 죄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동부 지역의 샤부라 난민촌 등에 민간인 대피 명령을 내렸다. 6일 이 지역에서 첫 대피령을 내린 지 닷새 만이다. 알자지라 등은 라파 동부뿐 아니라 중심부와 가까운 3개 지역과 도시 내 난민 캠프 등에도 대피 명령이 발령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동부에서 중부로 가는 길목의 쿠웨이트병원은 모든 환자를 다른 곳으로 이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날 CNN은 대피 명령을 받지 않은 라파 서부에도 이스라엘군이 미사일을 다수 떨어뜨렸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이런 이스라엘군의 모습을 볼 때 라파 중심부를 향한 지상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