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기도 수원의 공군 10전투비행단 비행기지. 하늘은 구름도, 바람도 한 점 없이 맑았다. 반세기 넘게 우리 영공을 지키며 ‘하늘의 도깨비’로 불린 F-4 팬텀 전투기가 그의 마지막 임무인 고별 국토순례 비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F-4E 엔진 굉음을 들으며 8명의 조종사와 취재진은 영화 ‘탑건’의 한 장면처럼 나란히 격납고로 걸어갔다. 활주로에선 비행 전 최종 점검을 위해 장병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F-4E의 고별 국토순례 비행에 취재진은 조종복과 장구를 착용하고 팬텀 후방석에 탑승해 마지막 비행을 체험했다.
비행에 나선 팬텀 4대에는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의 특별지시로 ‘필승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5년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D 5대로 구성된 편대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부여했던 명칭과 같다.
필승편대 전투기 4대 중 2대에는 한국 공군 팬텀의 과거 도색이었던 정글 위장 무늬와 연회색 도색을 적용해 의미를 더했고, 나머지는 현재의 진회색 도색으로 비행에 나섰다
동체 측면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라는 기념 문구와 함께 팬텀을 상징하는 ‘스푸크’(spook·유령)가 그려졌다.
왼쪽 스푸크는 공군의 상징 '빨간 마후라'를 매고 가슴에 태극 무늬를 새겼다. 오른쪽 스푸크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頭釘鉀)을 입고 현재 공군에서 F-4E만이 운용할 수 있는 AGM-142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을 들었다.
정정한 노병도 희끗희끗해진 머리는 숨길 수 없는 법. 힘찬 엔진소리를 내는 F-4E였지만 곳곳에 내려앉은 세월의 더께가 느껴졌다. 후방석에 앉아 착용한 안전벨트의 가죽은 낡았고, 쇠붙이로 된 결속부는 닳아 있었다. 전투기의 계기판, 백미러도 때가 타 연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별비행이란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기체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단 8초. 10시 정각, ‘필승 편대’ 고별 국토순례비행의 막이 올랐다.
항로에 들어서기 위해 급선회 기동을 하자 원심력에 의해 중력가속도(G)가 발생했다. 약 3G(중력의 3배) 가량의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그러자 G슈트에 공기가 자동으로 주입됐다. 공기압을 이용해 하체에 혈액이 쏠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캐노피(조종석 덮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수원 시내가 정면으로 보였다. 기체가 거의 70도 가량 왼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선회 기동 이후엔 지면과 평행하게 비행했지만, 기류의 영향으로 기체가 꾸준히 상하로 꿀렁거렸다. 레이더와 계기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뱃멀미와 같은 이유로 속이 매스꺼워지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 탓에 태양열은 조종석을 뜨겁게 달궜다. 4번기 전방석 조종사인 박종헌 소령은 “여름에 비행하다보면 속옷까지 땀으로 흠뻑 젖을만큼 뜨겁다”고 했다.
이륙 후 편대는 핑거팁 대형(손가락을 붙였을 때 검지부터 소지까지의 삼각형 모양)을 유지하면서 4번기만 좌우로 기동하며 상황에 따라 레프트 핑거팁, 라이트 핑거팁 대형을 만들었다. 기체간 간격이 불과 2~3m. 옆 기체 조종사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비행에 나선 필승편대는 모(母)기지인 수원기지 활주로에서 이륙해 역 V자 모양인 ‘핑거팁’ 대형으로 편대비행했다. 촬영을 위해 F-15K 두 대도 편대에 합류했다.
필승편대는 곧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캠프 험프리스가 있는 평택, 독립기념관이 있는 천안 상공을 날았다.
공군의 핵심 기지로 손꼽히는 충주·청주기지 상공을 통과한 편대는 과거 팬텀이 활약한 동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냉전 시대 팬텀은 1983년 Tu-16 폭격기, 1984년 Tu-95 폭격기 등 동해안 쪽 영공을 침범한 옛 소련 전력 차단에 나선 바 있다.
한국 중공업과 무역 성장을 이끈 포항·울산·부산·거제를 통과한 편대는 ‘팬텀의 고향’ 대구기지에서 재급유를 받았다.
대구기지는 1969년 8월 29일 미국이 공여한 F-4D 인수식이 열린 곳이다. 한국은 당대 세계 최강 전투기였던 F-4D의 4번째 운용국이 되면서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
고별 비행의 절반을 돌고 기름을 채운 편대는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를 개발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위치한 사천 하늘로 향했다.
사천 상공에서는 KF-21 2대가 합류, 한국 공군의 세대교체를 기념했다. 한국 전투기의 과거(F-4E)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데 모여 비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편대 후방에서 비행하던 KF-21은 여수 상공부터는 전방으로 이동하며 앞으로 F-4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 상공까지 동행하던 중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복귀하십시요”라는 KF-21 조종사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F-4E 탑승자는 물론 55년간 임무를 마치고 수원기지로 돌아가는 F-4에게 전하는 마음 또한 느껴졌다. KF-21은 우측으로 급선회하며 이탈했고, F-4E는 플레어(섬광탄)를 쏘며 화답했다.
편대는 가거도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미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하는 군산기지로 향했다가 수원기지로 무사 복귀하며 3시간여에 걸친 국토순례 비행을 마무리했다.
비행에 참여한 제10전투비행단 제153전투비행대대 박종헌 소령은 “국민의 성금으로 날아올랐던 필승편대의 조국 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이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의 고별 국토순례 비행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년 간 한반도 하늘을 지배해왔던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 F-4 팬텀이 다음달 7일 퇴역식을 앞둔 마지막 임무다. 약 3시간 동안 팬텀 주요 전적지 상공을 차례로 비행하며 팬텀에, 팬텀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켜온 한반도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었다.
F-4 팬텀은 푸에블로호 피랍사건(1968년), 김신조가 침투한 1·21사태(1968년),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자 국민들은 부족한 국방 예산을 대신해 십시일반 방위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63억 원 중 71억 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이들은 이날 서울 등 12개 주요도시 상공을 순례비행하며 국민들에게 퇴역 신고식을 가진 것이다.
현재 공군은 성능 개량형인 F-4E 10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그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다. 팬텀은 1969년 도입된 후 1994년 KF-16 전력화 전까지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지금은 대부분 퇴역하고 F-4E 10여 대만 남았다. 팬텀의 퇴역식은 내달 7일 수원기지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