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쿠바 진출하려면 ‘통제 경제’ 이해부터…현지 직원도 정부가 배정”

◆유성준 코트라 아바나 무역관장

'살사의 나라' 쿠바 수교 100일

19년전 개설·유일한 한국 공관

미 제제로 쿠바 직거래 어려워

무역결제 안전장치 마련 과제

니켈 풍부한 카리브해 중심국

잠재력 크나 사회주의 이해를

유성준 KOTRA 아바나무역관장유성준 KOTRA 아바나무역관장




“쿠바에는 한인 이민자 후손 1100여 명이 계십니다. 65년 만에 수교 소식이 전해지자 부모님의 독립운동 모금을 보고 자란 한인 3세대들이 가장 감격스러워하더군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부모님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으니까요.”



한국과 쿠바의 수교 100일(24일)을 앞두고 유성준 KOTRA 아바나무역관장과 20일 e메일·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유 관장은 “쿠바 한인 후손 가운데 현지에서 태어난 3세대가 수교에 특별한 감회가 있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바나무역관은 쿠바 내 유일한 우리나라 공관으로 수교 이전부터 쿠바와의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경제외교의 최일선 현장이다. 아바나무역관은 2005년 개설돼 올해로 19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 관장은 리마(페루)와 카라카스(베네수엘라)·키토(에콰도르) 무역관장을 역임한 KOTRA의 대표적인 중남미통이다.

유 관장은 “우리나라가 꽤 오래전부터 쿠바와의 수교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1999년 미국의 쿠바 금수 조치 해제를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우리나라가 찬성표를 던진 것이 양국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KOTRA가 쿠바와의 교류에 나선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는 “1996년 아바나국제박람회에 KOTRA가 처음으로 참가하면서 경제협력의 물꼬를 텄다”며 “2003년에는 쿠바 무역 기관과 업무 협정을 체결하는 등 미수교국임에도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아 쿠바 정부로부터 무역관 설립을 허가받았다”고 전했다. 이곳은 본업인 경제 교류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영사 기능도 맡고 있다.

6세대까지 내려간 ‘애니깽’ 후손들…독립유공자·한글학교 지원 기대


안토니오 김(왼쪽) 쿠바한인후손회장과 유성준 아바나무역관장이 아바나 소재 한글학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KOTRA안토니오 김(왼쪽) 쿠바한인후손회장과 유성준 아바나무역관장이 아바나 소재 한글학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KOTRA


쿠바 이민 사회는 영화 ‘애니깽(에네켄·용설란)’으로 알려진 멕시코 농업 이민자들이 1920년대 쿠바로 이주하면서 형성돼 지금은 이민 6세대까지 이어졌다. 유 관장은 “한인 사회는 이번 수교로 인해 한국 정부의 독립유공자 지원과 후손 찾기, 한글학교 지원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쿠바 한인들은 1930년대 후반부터 독립운동 모금 활동을 벌여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유공자로 추서되기도 했다.

그는 ‘살사의 나라’ 쿠바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고 했다. 진출 기업도 없고 장기 체류자도 20여 명 수준에 그친다. 쿠바가 2015년 미국과 수교한 후 한때 연간 1만 명이 넘는 한국인 관광객이 들어왔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2021년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쿠바에 한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도 문을 닫았죠. 쿠바 여행 이력이 있으면 미국의 ‘전자입국허가시스템(ESTA·무이자입국사전심사제)’에서 제외돼 별도의 비자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업인이 쿠바 방문을 계획했다가도 ESTA 불허 가능성을 말하면 계획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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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교로 인해 당장 경제협력이 활성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제재로 우리 기업이 주로 이용하는 미국 은행을 통한 달러 결제가 안 되는 데다 신용장 개설 같은 기본적인 무역 결제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멕시코와 파나마 같은 제3국 에이전트를 통한 우회 교류만 이뤄지고 있다. 그는 “수교로 그동안 불가능했던 정부 차원의 협력을 통해 무역 결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교류가 본격화할 것”이라며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미·쿠바 수교 때 크루즈선 입항…아바나 전체가 들썩


쿠바의 명물 올드카. /서울경제DB쿠바의 명물 올드카. /서울경제DB


그는 쿠바 진출에 앞서 쿠바의 경제 시스템부터 이해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당부했다. “무역관 현지 직원이 두 명 있는데 직접 채용한 것이 아닙니다. 쿠바 국영 용역 회사에서 뽑아서 보내준 것입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쿠바는 장기적으로 잠재력과 매력이 크다고 한다. “쿠바는 카리브해 연안국 중심 국가입니다. 인구도 가장 많고요. 원래 소련의 원조 경제 체제였기에 이렇다 할 공산품 생산이 없습니다. 미개척 시장으로 소비재 시장의 잠재력이 있는 것이죠. 구매력 차원에서 보면 국영기업이 단연 으뜸입니다. 지난해에는 국영 관광·교통공사가 현대차·기아의 자동차 800대를 들여왔습니다. LG전자는 파나마에서 현지 직원을 보내 관리하는 애프터서비스(AS) 센터까지 운영하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유 관장은 “미국과 쿠바가 수교하자 아바나 전체가 들썩였다”며 “크루즈 선박 입항에 맞춰 식당과 호텔·가게들이 재단장하고 관광객이 뿌리는 달러 팁에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쿠바 정부가 경제난 타개를 위해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자영업에 이어 중소기업 설립을 허용해 현재 1만여 개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쿠바는 전력난과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가공식품을 포함한 농업 분야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차전지 원료인 니켈과 코발트 매장량이 풍부한 것도 매력적이다. 유 관장은 “캐나다는 미국의 제재에 상관없이 쿠바에 니켈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중국도 광산 개발을 준비 중”이라며 “광산 분야는 우리와 협력할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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