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신임 대만 총통이 20일 취임식에서 반도체, 인공지능(AI), 군수, 보안, 통신 등 5대 신뢰 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에 맞서 첨단산업을 대만의 민주·평화·번영을 위한 경제안보의 수호신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앞서 라이 총통은 경제부 장관에 대만을 대표하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 TSMC의 소재·장비 납품 협력사인 톱코그룹의 궈즈후이 회장을 지명했다. 전략산업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일본 반도체 산업과의 협력 등을 위해 반도체·에너지 분야 경험이 풍부하고 일본어를 공부한 궈 회장을 장관으로 앉혔다는 언론의 분석이 나온다. 라이 총통은 경제 분야 고위급 관료 6명 중 5명을 정치 이력이 없는 산업계 출신, 학자 등으로 인선했다. 반(反)기업 정서가 강하고 기업가를 경시하는 우리 풍토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반도체 전문가인 라이 총통은 후보 시절 공약한 ‘대만판 실리콘밸리’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TSMC는 최근 AI 반도체의 핵심인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직접 생산하겠다며 한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국·중국·일본 등 다른 주요국들도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수십조 원씩의 보조금을 뿌리고 경제안보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무역 분쟁마저 마다하지 않고 있다. 전략산업 경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고 있는데도 한국은 기업만 나 홀로 뛰고 있는 형국이다. 첨단산업 지원은 ‘대기업 특혜’ 프레임에 막혀 올해 말 일몰되는 투자세액공제(최대 1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사이 한국의 과학기술은 우주항공·양자역학 등 11대 분야 핵심 기술에서 중국에 역전당했다. 첨단 반도체의 한국 내 생산 비율이 현재 31%에서 2032년에는 9%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이 ‘초격차 확대’로 선도자가 되기는커녕 후발 추격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와 인재 육성으로 초격차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세제·예산·금융 등 전방위 지원과 규제 혁파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민관이 원팀으로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