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업계는 올해가 가상자산 제도화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 최초의 가상자산 단독 법안 시행이 오는 7월 예정돼있고, 토큰증권 법제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등 개정안도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사업자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올 초 발표한 업무계획에서 가상자산사업자 관리·감독 강화를 위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 방향 등을 명시했다.
가상자산 업계와 댱국 간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업계를 대표해 민관 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할 단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난 3월 한국핀테크산업협회 산하 ‘디지털자산 인프라 협의회’가 출범했다.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업체 인피닛블록의 정구태(사진) 대표가 초대 협의회장을 맡았다.
16일 디센터와 만난 정 대표는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파편화된 가상자산 업계의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상자산 기업들을 한 곳에 모아 중요한 의제를 뽑아내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야하는 시점”이라며 “그 누군가 대신 해줄 수 없다면 미약하지만 지금의 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협의회장에 취임했다”고 밝혔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협의회 회원사들은 주로 금융제도권 안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자산 수탁, 퀀트 운용, 데이터 분석, 전자지갑 솔루션 업체 등이 주로 포진해 있다. 본격적인 활동은 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개시될 예정이다. 정 대표는 “정무위원회 위원들과 국회포럼과 세미나 등을 개최해 해외 가상자산 규제 사례와 제도 개선 방안, 실행 아이디어 등 국내 가상자산 산업 발전을 위한 업계 기여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 대표는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다양성 부족'으로 진단했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금융위가 최근 발표한 실태조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국내 가상자산사업자 시가총액 80% 이상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치우쳐있다. 그는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예를 들어 비트코인(BTC)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준비한다고 하면 거래소뿐만 아니라 자산 수탁, 지수 관리, 장외 거래, 유동성 공급,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사업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거래소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거래·보관·지갑서비스로 한정된 가상자산사업자 유형을 더욱 세부적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이다. 거래소가 영위하고 있는 매매·거래·수탁·예치·운용 등 사업 기능을 분산해 다양한 사업자들이 실행하고 상호 견제하는 체계를 만드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그는 “전통 금융업에서도 은행과 증권 카드, 보험 등 다양한 사업 유형이 존재하는 것처럼 가상자산 사업에도 이에 준하는 사업 유형을 점차 정의해나갈 필요가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합의가 어렵다면 ‘동일기능-동일위험-동일규제’의 관점에서 자산운용법 등 기존 규제 범위에 가상자산사업자를 포함하는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인과 기관의 시장 참여 허용도 시급한 문제다. 정부는 그림자 규제의 형태로 법인·기관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하기 위한 실명계좌를 개설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정 대표는 가상자산 시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법인의 시장 진입을 허용해 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개인 투자자는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 투자로 일부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 지식이 부족한 개인의 시장 참여는 지금보다 더 엄격히 다룰 필요가 있다”며 “직접 투자를 선호하는 개인이라면 전문투자자와 일반투자자를 구분해 확실한 차별을 둬야 한다. 일반투자자는 고위험 투자에 따른 사전 교육을 반드시 받게 해 ‘묻지마 투자’를 점차 근절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자산 인프라 협의회의 목표는 이와 같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 현안을 당국과 공유하고 민관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이를 위해선 정부 당국이 가상자산에 포용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향적 태도를 취한다면 미국, 일본, 동남아 등과의 가상자산 시장 선점 경쟁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민간에서부터 시작된 가상자산 산업의 특수성을 받아들이고 민간과 공조해 정책 추진 방향을 설계한다면 가상자산 제도화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