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제 전력망 사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계통 용량만 선점하는 이른바 ‘전력망 알박기’ 퇴출에 나선다. 전력망 이용에 대한 책임성 강화를 목적으로 ‘보증금 예치제’ 도입도 검토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0일 이호현 에너지정책실장 주재로 열린 전력망 혁신 전담반(TF)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지역별 맞춤형 계통포화 해소대책’을 논의했다. 산업부는 “글로벌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흐름 속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지속적으로 확대할 전망”이라며 “정부도 기존보다 약 2배 증가한 56조 5000억 원 규모의 송변전설비 투자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전력망 건설 속도가 재생에너지 보급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에는 1~3년이 걸리는 데 비해 송·변전설비 건설에는 최소 6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제주 등 재생에너지가 집중 보급된 지역에 발전 설비가 추가로 들어설 경우 블랙아웃을 막기 위한 출력제어가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호남 지역의 재생에너지 용량은 약 11GW(기가와트)이며 오는 2032년까지 32.5GW가 추가로 연계될 예정이다. 만약 추가로 생산된 전기를 실어 나를 전력망이 확충되지 않는다면 호남 지역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3% 이상에 대한 출력제어가 필요할 전망이다.
이에 산업부는 신규 핵심선로의 조기 건설과 기존 전력망의 효율적 활용을 골자로 한 이번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전력망 알박기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 계통용량만 차지한 채 실제 사업을 하지 않거나 장기간 사업 실적이 없는 허수 사업자를 걸러낸 뒤 확보한 여유 물량을 후순위·신규 사업자에게 배분한다.
또 계통 안정화 설비를 도입하거나 피크시간대 출력제어를 조건부로 발전허가를 내준다. 전압을 빠르게 조절해 계통 안정성을 향상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해 피크시간에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그 외 시간에 방전해 계통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우선 접속을 허용한다. 이로써 정부는 2027년까지 최대 9.3GW의 여유 용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1GW는 원전 1기 수준의 발전량이다.
해외에 도입된 망이용 보증금제를 국내에 들여오는 방안도 유력시된다. 발전허가(또는 이용계약)시 보증금을 납부하고 상업운전 때 반환받는 방식이다. 보증금은 MW당 영국이 1600만 원, 독일이 3000만 원, 스페인이 5200만 원이다. 아울러 한국전력은 앞으로 출력제어율이 3% 이상인 변전소를 공개할 방침이다. 상대적인 계통 여유가 있는 지역으로 발전사업 분산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산업부는 전력망 신설·보강에도 힘을 쏟겠다는 구상이다. 남아도는 전력을 옮기기 위한 호남~수도권 융통선로 건설 기간을 1년 단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구체적으로 신정읍~새만금#2~신서산 선로의 준공 시점을 오는 2031년 12월에서 2030년 12월로 1년 앞당기고, 신계룡~북천안 선로도 2031년 12월에서 2030년 12월로 단축한다.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