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제1야당인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면 국방 예산을 늘리고 핵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 달 뒤 치러지는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우클릭’ 행보로 중도보수 표심까지 끌어안으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3일(현지 시간) 잉글랜드 북부 유세에서 “노동당은 안보와 병력, 핵 억지력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핵 억지력 3중 잠금’을 골자로 하는 국방 정책을 발표했다. 핵 잠수함 4척 건조, 해상 억지력 유지, 효율적인 해상 순찰을 위한 잠수함 업그레이드 등이 이날 발표된 주요 안보 정책이다. 이와 함께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국방 예산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꺼냈다. 보수당 공약과 같은 수준이다. 올해 영국의 국방비는 GDP의 2.3% 수준이다.
이는 노동당의 전통적 노선과는 거리가 있는 파격적인 행보다. 노동당은 특히 핵무기와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등 안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9월 제러미 코빈 전 노동당 대표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핵 없는 세상을 보고 싶다”면서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방·안보가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하자 우측 행보를 강화함으로써 수권 정당으로서 능력과 신뢰를 보여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이날 행사에서 ‘차기 총리가 될 경우 핵무기 사용을 승인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우리는 그것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국 방어에 필요하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음에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유권자들에게 국방·보건·이민 문제에 대해 신뢰를 주기 위해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한편 이날 영국의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도했던 그는 극우 성향의 영국개혁당 후보로 총선에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그러잖아도 노동당에 크게 밀리고 있는 집권 보수당에 악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