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4개월째 지속되는 의정갈등…의료계,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박홍용의 토킹보건]

직접 메스를 잡아야만 의료정책 짤 수 있는 것 아냐

정부 부처 공무원, 국민으로부터 정책 조정·예산 배분 등 위임 받은 존재

시장 실패, 총선이든 대선이든 정부가 결과로 책임지는 것

의료계, 혁신도 아닌 의대증원으로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 펼쳐

의대증원 돌이킬 수 없는 현실…특위서 머리 맞대고 정책 다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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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란 주장의 근거를 전문가 집단의 신념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4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의정갈등의 핵심은 바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다. 한마디로 ‘니들이 의료에 대해서 뭘 알아’가 이번 사태의 고갱이다. 의료계는 의료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의료정책을 짜서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맞이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의료에 대해 문외한인 국민들이 정부의 여론호소에 경도돼 의대증원에 대해 70%가 찬성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의사만 의료정책 짤 수 있다는 주장의 오류=의료계의 주장은 오직 의사들만 의료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미 그들은 의료면허가 있는 의료관리학 교수들이나 보건학과 교수들을 임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상만 좇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계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논리구조를 확장하면 우리 사회 어느 부분에서도 직접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정책을 입안을 할 수 없다는 논리가 나온다. 산업정책을 입안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은 직접 수출 기업을 운영하고, 자원 개발 회사에서 일을 해봐야 하나. 국토교통부 공무원이 직접 철도를 운전하고 화물차를 운전하나. 아니면 민항기를 운전하나. 직접 배를 몰줄 알고 잠수를 해야만 해양수산 정책을 입안할 수 있나.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일들을 직접 해보고 거시 정책을 짜고, 예산, 기금 투입을 결정하나. 공무원들은 각자 맡은 섹터에 대해 정책을 조정하고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권리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다. 의료계의 논리대로라면 의료계도 공무원들을 비판하면 안된다. 직접 공무원일을 해보지 않고 공무원을 비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투기 이미지.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전투기 이미지.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시장실패의 결과는 온전히 정부가 책임지는 것=4년간 수십억원을 투자해 육성하는 공군사관학교 출신 전투기 조종사들이 제대 이후 민항기 조종사 자리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우려해 정부의 면허 증가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출격을 거부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승진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경찰들이 ‘전 세계에서 살인율이 제일 낮은 나라에서 왜 경찰을 추가로 뽑냐, 112 신고 후 출동시간이 전 세계에서 제일 빠른 나라에서 왜 추가로 경찰을 뽑냐’고 주장하며 업무를 거부한다면. 발칙한 상상이지만 국민들은 현재 의대생들의 휴학과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이탈을 앞의 사례와 별반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특정 섹터에서 인력 수요가 많으면 인력을 늘리고 수요가 줄어들면 인력을 줄이는 것이다. 바로 시장 실패를 막기 위해서다. 의료계는 '지금까지 의료현장에서 시장 실패가 무수히 발생했지만 이를 방치해왔던 정부가 지금 시장을 바로잡는다고? 안 믿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정부에서 특정 정책에 실패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정부가 지는 것이다. 이는 총선 패배일 수도 있고, 집권 연장의 실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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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으로 의대증원 정책이 심판받았다는 주장의 오류=의료계는 지난 4월 10일 총선에서 정부 여당이 참패한 것을 두고 여당의 일방적인 의대증원 정책에 대해 국민이 심판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견강부회에 가깝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대증원에 더해 정부 여당의 정책보다 더욱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대증원 정책에 국민이 반대했다면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정부 여당에 의대증원 정책을 전면 폐지하라고 먼저 요구했어야 한다. 이는 의대증원 정책을 놓고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계만 빼놓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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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21세기판 러다이트 운동 펼치는 의료계=과거 1990년대 벽돌만한 핸드폰이 등장했을 때 삐삐(beeper) 제조업체들이 파업에 나섰나. 시발택시가 나왔을 때 인력거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보장해달라고 파업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는가. 우리는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 저기서 혁신 기업이 튀어나오고 경쟁의 파도에서 살아남지 못한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의료계는 의대증원을 추진한 정부가 인공지능(AI)의 발전이란 변수를 빼놓았다고 주장한다. AI 진단과 로봇 수술 등이 적극 도입되면 기존에 남아 있던 의료진들의 수입은 떨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기존 의료진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의료계는 AI와 로봇 수술을 하지 말자고 주장할 것인가.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면 언제나 기존에 있는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또 다른 혁신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의대증원은 게임 체인저와 같은 혁신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의료수요가 많으니 공급을 늘리는 것뿐이다. 의료계는 의사들이 개인이 대출을 받아 병원을 설립하고 투자한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한다. 맞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요가 많은 분야에 공급을 늘리는 것뿐이다. 배추 가격이 올라가면 정부가 비축물량을 늘리는 것처럼 말이다. 전기차의 등장, 스마트폰의 등장과 같은 파괴적 혁신과도 거리가 먼 의대증원에 이토록 저항하는 것에 동의할 국민들은 많지 않다. 고장이 잘 나지 않는 전기차가 출현했다고 정비업계에서 파업을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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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특위에서 머리를 맞대는 것뿐=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의대증원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총파업, 진료거부 등을 논의하고 있다. 환자들과 국민들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우리도 의료현장에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의대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가 선결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은 헷갈린다. 전공의들의 이탈이 현재와 같은 의료공백 사태를 불러온 게 명확해 보이는데 의료계에서 의료공백의 원인과 결과를 혼용해서 쓰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 발표 이전에는 우리 의료 생태계가 정상이었나. 이전부터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했어야 의료계 주장의 일관성이 있다고 믿을 수 있지 않겠나.

현재 정부는 "전공의 단체에서 요구한 7가지 중 의대증원 전면 백지화를 제외한 나머지 사항은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제대로 요구사항을 처리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특위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테이블에 앉아 세부 각론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내야 한다. 특정분야에 대한 수가 인상률이 낮다면 부족하다고 주장하면 된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내 지갑은 얇아지고 있지만 여당과 야당은 내전처럼 싸우기만 한다. 누구 하나 해결을 하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스트레스 덩어리다. 그런데 우리가 심신이 아플 때 찾는 곳조차 현재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선사하고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의정갈등의 조속한 해결이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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