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030200)가 해외 자회사인 '엡실론'에 추가 투자를 단행하고 글로벌 전용 회선·데이터 사업 확장에 나선다. 이번 투자는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엡실론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기존 보유하고 있는 네트워크 거점시설(PoP)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KT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엡실론 지주사인 싱가포르 법인에 약 580억 원 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해 8월 김영섭 KT 대표 취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투자다.
엡실론은 영국, 미국, 불가리아, 홍콩 등 전 세계 20개 국가 41개 도시에 260개 이상의 해외 PoP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데이터 전문 기업이다. 또 영국 런던, 미국 뉴욕, 싱가포르에 3개의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통신사와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PoP 기반 본사와 지점을 연결하는 글로벌데이터·클라우드 연결 서비스 등을 영위하고 있다.
엡실론은 2021년 구현모 전 KT 대표 시절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기업)’ 도약을 위해 첫 번째로 인수합병(M&A)를 단행한 곳이다. KT는 2021년 9월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대신프라이빗에쿼티(대신PE)와 함께 약 1700억 원을 투자해 지분 100%를 인수했다. 당시 KT는 934억 원을 투자해 엡실론 지분 58%를 확보했다.
KT는 이번 투자를 통해 엡실론에 대한 누적 투자금은 1514억 원으로 늘었으며 지분율도 69%로 확대됐다. 2대주주인 대신PE는 추가 투자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분율은 기존 42%에서 31%로 축소됐다.
KT가 김 대표 취임 이후 대체불가토큰(NFT) 등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매각하거나 해외 법인을 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엡실론에 대한 추가 투자를 나선 것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김 대표는 최근 화물운송 플랫폼을 운영하던 '롤랩' 지분을 매각하고, 베트남 헬스케어 사업도 사실상 축소 수순을 밟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엡실론에 대해 추가 투자를 단행한 것은 미래 사업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시급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엡실론은 2021년 KT 품에 안긴 이후 매년 손실 규모가 늘어나면서 실패한 M&A 사례로 지목되기도 했다. KT는 자체 기술과 국내 기업간거래(B2B) 고객 기반에 엡실론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영업 거점을 결합할 경우 큰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실상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엡실론은 2021년 64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후 2022년에는 240억 원, 지난해에는 1249억 원으로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말 기준 엡실론의 자산 규모가 1170억 원 수준인 상황에서 누적 손실이 1500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잠식이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KT는 이번 엡실론 추가 투자 이후 대대적인 사업 구조 개편에 나설 계획이다. 엡실론이 보유한 PoP 중 수익성이 낮은 곳에 대해선 청산 절차에 돌입하고,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KT는 지난해 말 아랍에미리트(UAE) 소재 엡실론 법인을 청산한 바 있다. KT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투자 금액을 밝히긴 어렵다"면서 "국제 전용 회선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 시장 대응 차원에서 투자를 포함한 긍정적인 조치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