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의 반발이 커지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4일 상법 개정을 전제로 “형사처벌 규정이 과도해 (상법상) 특별배임죄는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면서 경영 판단 원칙 등을 도입해 배임죄 범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법 382조는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상법이 소액주주 보호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정부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법이 개정될 경우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주주들이 소송을 남발함에 따라 이사들이 배임죄 위험에 상시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 당국은 재계의 우려를 경청하고 경제 현장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상법 개정으로 과도한 시장 개입의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사들이 소송에 대한 공포로 인해 기업의 미래를 위한 인수합병(M&A)이나 투자를 과감히 결정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152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상법 개정안이 확정되면 M&A 계획을 재검토하겠다(44.4%)거나 철회·취소하겠다(8.5%)는 상장사가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유례가 드문 형법상 배임죄까지 엄존하는 상황에서 상법상 규제까지 추가되면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다만 후진적인 지배구조로 인해 대주주의 이익을 우선한 결정이 상당수 있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정부는 주주 보호와 경영 자율권 보장이 균형 있게 이뤄지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취지에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면책 사항과 규정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이현령비현령’식 배임죄 등에 대해서도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하고 선진국과 같이 형사처벌 대신 민사로 다툴 수 있도록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배주주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일반 주주의 이익을 희생한 쪼개기 상장, 사익 편취 등에 나설 유인이 줄어들도록 징벌적 상속세 완화 및 경영권 방어 장치 등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