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이동통신사 유치, 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 등 4월 총선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던 가계 통신비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해졌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보여주기식 성과내기에만 급급해 정책을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6일 정보통신(IT)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날 스테이지엑스의 28㎓ 주파수 할당 사업자, 즉 제4이통사 후보 자격을 취소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스테이지엑스는 올해 1월 주파수 경매를 통해 제4이통사 후보 자격을 얻고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을 위한 절차를 밟아왔지만 과기정통부는 이 업체에 결격 사유가 있다고 봤다.
과기정통부는 스테이지엑스의 자금 조달 상황을 문제삼았다. 지난해 12월 스테이지엑스는 주파수 경매 참여를 위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205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적었다. 부속 서류인 ‘주파수 이용계획서’에 사업 인가 후에 자금 조달을 완료한다고 썼고, 이에 최근 500억 원가량을 먼저 유치한 뒤 제4이통사로서 나머지 금액을 채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이 같은 계획이 스테이지엑스와 투자사 간의 사적 계약 내용에 불과해 행정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대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할당대상법인이 필요서류의 제출 등 필요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주파수 할당 고시 제12조 3항을 근거로 들며, 법률 자문을 통해 이 조항이 사업자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현 시점에 2050억 원 조달이 완료돼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정부가 후보 사업자의 재정능력을 사전에 검증하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자금 조달 완료 시점을 두고 이미 지난해 12월 서류 제출 때부터 반년 동안이나 양측 이견이 존재했지만, 재정능력 검증 절차가 없다보니 서로 조율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업 자격 취소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1년 전부터 준비한 8번째 제4이통사 유치 노력이 다시 물거품이 됐고 스테이지엑스 입장에서도 기술 개발, 인프라 구축, 인력 채용, 사무실 마련 등 관련 투자를 반년 가까이 진행하다가 사업권이 박탈된 만큼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종 취소 결정까지 한달 간의 청문 절차가 남았지만 과기정통부의 입장이 완고하고 스테이지엑스도 자금 조달 계획을 단기간에 임의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정상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양측 다 문제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과기정통부에 있다”며 “허가제 체제에서 중복해서 재정능력을 검증하는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 관련 면제 조항을 넣은 건데 등록제로 바꾸면서도 이를 계속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문형남 숙명여대 글로벌융합학부 교수도 “해당 사업자의 재정 능력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었는데 이를 사전에 검증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에 제도 개선을 통해 제4이통사 후보의 재정능력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과거와 달리 앞으로의 제4이통사는 통신 3사도 사업성 문제로 포기한 28㎓ 주파수를 갖고 수익성과 서비스 품질을 갖춰야 하는 만큼 역량 검증이 필수적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8번의 제4이통사 유치 사례를 돌아보면 결국 사업자의 재정능력이 시장 진입의 성패를 결정한다”며 “관련 심사를 강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통신정책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 폐지를 공언했지만 총선 후 사실상 손을 놓은 모습이다. 여야 갈등 속 야당 협조를 구하지 못한 탓에 단통법 폐지 법안은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고 22대 들어 다시 법안이 상정됐지만 야당 의석이 더 늘어 추진동력도 떨어진 상태다.
방통위는 임시방편으로 단통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실상의 단통법 폐지 효과를 기대했지만 역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통신사가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최대 50만 원을 추가로 줄 수 있는 전환지원금을 3월 중순 도입하며 ‘갤럭시S24’를 ‘공짜폰’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식의 기대까지 불어넣었다. 하지만 현재 통신 3사가 갤럭시S24 같은 고가폰에 책정한 전환지원금은 요금제에 따라 몇 만원에 불과하다. 방통위는 전환지원금 도입 초기에 통신사들은 물론 애플코리아 임원까지 불러 단말 지원금을 확대해 달라고 압박했지만 총선 후엔 이 같은 노력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