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로 농가가 몸살을 앓으면서 채소류 도매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 복숭아나 자두를 포함한 과일류도 작황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여름 강수량 역시 예년보다 많을 것으로 예보됐기 때문이다. 최근 사과·배에 발병한 과수 화상병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먹거리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2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전날 산지 공판장과 가락시장 등지에서 거래되는 시금치(4㎏)의 도매가격은 2만 744원을 기록해 5월 중순 대비 66.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청상추(4㎏)와 당근(1㎏) 가격도 각각 45.4%, 26.4% 올랐다. 높아진 도매가는 시차를 두고 소매가격에 반영되는 추세다. 20일 기준 시금치(16.2%)와 상추(11.1%), 당근(30.1%)의 소매가는 각각 전월 대비 높은 선에서 형성됐다. 사과나 배 역시 아직 올해 수확분이 출하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저장해둔 물량이 동나며 여전히 높은 값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
이달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더위가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농산물 생육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태다. 올여름 기록적인 장마까지 예상되는 가운데 농가에서는 복숭아·자두 같은 과일류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복숭아와 자두는 습기를 머금는 특징 탓에 장마에 가장 취약한 과일로 꼽힌다. 심해질 경우 당도가 떨어지고 상품성이 하락해 판매 자체가 어려워진다. 더욱이 6월부터 수확이 시작되는 이들 여름 과일은 장기 저장도 어렵다.
사과와 배도 장마철 습한 날씨로 인한 병충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재배 현장은 장마 이후 습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폭염에 따른 탄저병이 발생해 지난해에 이어 연속으로 작황 타격을 입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장마 기간에는 습기를 제거하고 해충을 걷어내는 작업마저도 하기 쉽지 않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제주도에 상륙한 장마 전선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상도 지역 날씨도 흐려 생육에 지장을 받는 상황”이라면서 “과일의 경우 장마와 폭풍은 치명적”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밖에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추가적인 식료품 물가 상승을 부추길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과수 화상병은 지난달 13일 올해 들어 처음으로 충청 지방의 사과·배 과수원에서 관찰된 이래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과수 화상병 발생 면적은 이달 19일 기준 55.2㏊로 집계됐다. 고온 다습한 환경을 선호하는 이 병의 세균이 장마·폭염·태풍 등 기상재해를 타고 올여름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ASF로 양돈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구시는 이달 19일 대구 군위군의 야생 멧돼지에서 ASF 양성이 확인됐다고 이날 밝혔다. 돼지 2만 4000여 마리를 사육하는 경북 영천시 소재 한 농가에서 이 병이 발견된 지 4일 만이다. 특히 경북 영천의 발생 사례는 201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ASF가 발생한 후 단일 농가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상기후는 가격 상승뿐 아니라 제품 판매 중단 사태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맥도날드가 20일 프렌치프라이 판매를 일시 중단한 것도 이상기후 탓으로 본다. 맥도날드가 고집하는 ‘러셋 버뱅크’ 품종 감자는 보통 미국 북서부의 아이다호주에서 냉동 형태로 수급된다. 앞서 2022년에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세계적으로 감자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에 매장을 둔 프랜차이즈 업계가 이를 활용한 메뉴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다만 프랜차이즈 업계의 관계자는 “작황에 문제가 있으면 글로벌 단위로 영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와 유통 업계는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먹거리 물가가 진정되는 상황에서 다시 여러 품목으로 가격 상승이 번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대형마트는 과일 산지를 다변화하는 한편 가격이 급등의 위험이 특히 높은 엽채류 같은 품목의 스마트팜 공급분을 평소 대비 20%가량 늘릴 예정이다. 정부도 올해 사과 가격을 큰 폭으로 끌어올린 탄저병, 과수 화상병과 ASF가 확산할 우려가 있는 만큼 이 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