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기자의 눈] 원산지 둔갑 방치, K-철강 좀먹는다

■김경택 산업부 기자


“한국산 조강으로 만든 철강 제품이 중국산으로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조강의 원산지를 표기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만난 철강사의 한 해외 영업 담당은 한국산 철강이 세계에서 ‘프리미엄’이 아닌 ‘마피’로 취급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원산지 둔갑의 마술 탓이다. 조강은 쇳물을 최초로 고체로 만든 철강 생산품으로 철강 업계에서는 ‘근본’으로 취급된다. 최종적으로 건물·자동차·선박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지만 저렴한 해외 조강을 들여와 한국산 철강 제품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가 제도적으로 조강이 아닌 최종 제품인 ‘철강재’를 가공한 국가를 원산지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강의 원산지가 어디인지도 사실상 구별할 수 없는 실정이다. 미국·유럽·캐나다·멕시코 등 선진국들이 조강을 기준으로 철강 제품의 원산지를 정하고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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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중국산 수입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철강 산업의 구조상 우리나라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주요 국가에서 중국산 철강을 견제한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큰 문제다. 국내에서 조강을 생산하는 철강사들은 물론 수입 조강을 활용하는 기업 역시 한국산 쿼터 산정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조강 원산지 구별이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 철강 산업의 자생력 역시 약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어차피 최종적으로 ‘한국산’ 인증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저렴한 수입산 조강에 대한 수요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산 ‘밀어내기’ 조강 역시 지금보다 더 한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국내 조강은 내수 감소라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올해 1~4월 국내 조강 생산량은 2122만 톤으로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감산에도 조강으로 만든 중간제품 역시 창고에 재고가 쌓여가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품질이 우수한 국내산 조강이 본연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강 기반 원산지 표기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김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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