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의 버치힐GC(파72) 18번 홀(파5). 최예림(25·대보건설)이 2m 조금 넘는 버디 퍼트를 남기고 있을 때 바로 뒤 조의 박현경(24·한국토지신탁)은 이 홀 드라이버 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드라이버 샷에 전혀 문제가 없던 박현경이었는데 타구는 오른쪽으로 휘어 깊은 숲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13언더파 동타인 상황에서 이러면 우승은 최예림 쪽으로 기울 상황. 하지만 숲으로 향한 박현경의 공은 나무를 맞고 내리막 경사를 타더니 안전한 지점에 떨어졌다.
둘 다 버디 퍼트를 놓쳐 18번 홀에서 계속된 첫 번째 연장 승부. 박현경의 드라이버 샷은 또 오른쪽으로 갔고 또 안쪽으로 들어왔다. 세 번째 샷이 썩 좋지 않아 왼쪽 경사의 5m 버디 퍼트를 남겼는데 박현경은 이걸 넣었다. 2주 연속 우승이자 시즌 3승, 통산 7승째였다. 상금은 1억 4400만 원.
요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박현경 세상’이다. 박현경은 30일 끝난 맥콜·모나 용평 오픈에서 3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03타를 적은 뒤 연장에서 버디를 잡아 파에 그친 최예림을 따돌렸다. 1주 전 BC카드 대회에서 4차 연장 끝에 윤이나를 누르고 우승했는데 바로 다음 대회에서 또 연장 우승이다. 투어 역사에 2주 연속 우승은 있었지만 2주 연속 연장 우승은 처음이다. 박현경은 2019년 데뷔 후 다섯 번 연장 승부 중 네 번이 우승이다. ‘연장전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우승하고 나면 곳곳에 인사를 다니는 등 여러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로 다음 대회에서는 컷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현경은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이기고 트로피를 보탰다. 투어 선수 출신의 ‘아빠 캐디’ 박세수 씨는 “(박)현경이는 늘 ‘왜’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파고드는 게 있다. ‘왜 골프 선수들은 우승 뒤 바로 다음 대회는 망치는 경우가 많을까’라면서 분석하고 점검하고 준비한다”고 했다.
이번 시즌 상금과 대상 포인트 부문에서 1위를 달리던 박현경은 3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이예원)로도 올라섰다. 2주 연속 우승과 시즌 3승 모두 처음인 박현경은 데뷔 후 첫 주요 타이틀 획득의 꿈을 부풀렸다. 아직 전반기지만 이 분위기를 이어가면 싹쓸이도 노릴 만하다.
박현경은 “2주 연속 우승 같은 기록은 내게 없을 줄 알았다. 전반기에 벌써 3승을 하니 작년 시즌에 막판까지 우승이 터지지 않아 힘들어했던 기억이 뚜렷해진다”며 “이번 시즌 메이저 대회에서 꼭 한 번 우승하는 걸 목표로 잡겠다”고 했다. 18번 홀 상황에 대해 “애초에 살짝 오른쪽으로 공략한 건데 더 밀리면서 나무 쪽으로 갔다. 행운이 따라 안쪽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한 박현경은 “겨울 훈련 동안 몸이 부서져라 드라이버 샷을 연습하고 운동 강도도 높여 처음으로 스쾃으로 100㎏을 넘게 들었다. 거리가 평균 5m 늘어 두 번째 샷 때 한 클럽 더 짧게 들게 되니 그린 적중도 높아지고 찬스가 그만큼 많이 온다”고 했다.
2라운드에 6홀 연속 버디를 앞세워 1타 차 선두에 오른 박현경은 이날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였다. 중반부터 최예림과 사실상의 2파전을 벌였는데 16번 홀(파4)에서 96m를 남기고 친 웨지 샷으로 탭인 버디를 엮어 다시 공동 선두를 만든 게 결정적이었다. 박현경은 정규 18번 홀에서 어렵지 않은 경사의 3m 버디 퍼트를 짧게 쳐 큰 아쉬움을 남겼는데 연장에서 더 긴 거리 버디 퍼트를 과감한 스트로크로 성공했다.
2018년 데뷔해 준우승만 여섯 번이던 최예림은 최종일 5타나 줄였지만 올 시즌 두 번째이자 데뷔 일곱 번째 준우승에 만족했다. 2위로 출발한 서연정은 10언더파 공동 5위로 밀려났고 이제영과 최민경이 11언더파 공동 3위다. 이예원은 8언더파 공동 12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