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나쁜 의도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고에서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는 없다. ‘모두’라는 말은 책임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해서 정말로 책임이 있는 사람의 책임을 희석할 때 자주 쓰인다.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공동체 전체로 환기하는 효과가 있을진 몰라도 책임을 묻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라는 말은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종종 함정에 빠뜨린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문제는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출산에 관한 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치인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하나를 꼽으라면 너도나도 저출산을 꼽는다. 지방자치단체장부터 국회의원, 부처 장관들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저출산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 이야기한다. 저출산 대응과 관련해 정치권에선 막대한 예산 집행, 수많은 인력 투입, 말의 향연이 벌어진다.
성적표는 몹시 초라하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6을 웃도는 수준이다. 출산과 육아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여성의 경력 단절, 일과 가정의 양립, 신혼부부의 주거 등 핵심 문제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 청년층의 출산 기피 이유, 청년세대 내 계층 격차,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는 1차원적 현금성 지원과 ‘빛 좋은 개살구’식 단편적 제안만 가득하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으로 투입된 약 48조 원 중 국내외적으로 효과성이 높다고 검증된 ‘일·가정 양립’을 위해 지원된 예산은 2조 원에 불과했다. 군 인력 증강 978억 원, 대학의 산학 협력 3025억 원, 새로운 예술가 및 문화 전문가 양성 83억 원 등 저출산과 무관한 게 대다수였다. 모두가 저출산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정말로 저출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를 바라보면 소수 특정집단에 중요한 문제는 금방 해결이 된다. 문제의 크기가 작아서 풀기 수월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모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를 다룰 때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 정치권은 무엇을 했는지, 사회는 어떻게 관망했는지, 부부는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저마다 탓하느라 바쁘다. 그렇게 모두에게 저출산의 책임을 지우고 있을 때 저출산 문제 해결은 점점 뒷전으로 밀린다.
이제는 책임 전가를 멈추고 진짜 저출산을 이야기할 때다. 60일이 막 지난 아기를 키우는 ‘내’가 겪는 모든 문제가 저출산 해결의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 저출산 문제의 진짜 해결 방안을 끈질기게 풀어 나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