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미국 최대 전력 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에 1조 원대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를 납품한다.
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넥스트에라에너지에 총용량 6.3GWh(기가와트시)의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하고 계약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규모만 지난해 북미 전체 ESS 용량(55GWh)의 11.5%에 해당하며 금액으로는 1조 원 수준이다.
주력 제품은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 셀을 적용한 ‘삼성배터리박스(SBB) 1.5’다. SBB 1.5는 동일한 공간에 더 많은 셀을 집약해 넣을 수 있어 기존 제품보다 37%가량 밀도가 높다. 이 제품은 지난달 말 독일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삼성SDI는 자체적으로 소화 약제를 분사하는 기술을 탑재해 안전성도 강화했다. 아울러 전력망에 연결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어 저렴한 설치 비용도 장점이다.
삼성SDI 배터리의 성능과 함께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제재하고 있는 점도 삼성SDI에 기회로 작용했다. 삼성SDI는 2018년까지 ESS용 배터리 시장의 50%를 점유하면서 위세를 떨쳤지만 중국의 값싸고 안전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시장을 점차 차지하면서 지난해 4.9%로 떨어진 바 있다.
넥스트에라에너지 납품이 최종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ESS용 배터리 시장에서 삼성SDI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최대의 전력 회사에 ESS용 배터리를 납품했다는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국이 2026년부터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추가적인 납품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전력난 극복을 위해 태양광발전 설비를 늘리고 있는 만큼 ESS용 배터리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태양광발전은 고정된 전력 생산량을 유지할 수 없어 ESS 시스템을 통한 공급 안정화가 필요하다. 올해 79억 달러(약 10조 9000억 원) 규모인 미국 ESS 시장은 2030년 187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2026년부터 고가의 NCA 배터리뿐 아니라 저렴한 LFP 배터리도 양산하며 제품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 구축할 예정인 배터리 공장에는 전기차용과 ESS용 생산라인을 함께 설치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인해 배터리 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번 납품 소식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