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갈등’을 빚고 있는 영풍(000670)과 고려아연(010130)이 이번엔 아연 제련 부산물인 황산 취급 문제를 두고 또 다시 감정이 폭발했다. 그간 영풍의 황산을 전적으로 처리해온 고려아연이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계약 종료를 선언하자 영풍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이례적으로 ‘횡포’ ‘갑질’ 등 날선 단어까지 사용해 영풍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양측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고려아연은 이달 3일과 4일 입장문을 수차례 배포해 황산 취급 대행 계약을 둘러싼 영풍의 최근 소송 제기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고려아연 측은 입장문에서 “영풍 측은 무려 7년 이상이라는 유예 기간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며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소송까지 제기하는 등 무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영풍이) 협상 중 소송을 제기하는 등 협상 상대방이자 오랜 동업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 측은 이어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는 영풍이면서도 오히려 고려아연이 갑질을 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까지 하고 있다”며 “이는 대주주 영풍의 횡포이자 위험 물질 황산 취급을 고려아연에 강요하는 위험의 외주화"라고 날을 세웠다.
양측 간 갈등의 중심에 선 화학물질 황산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아연 제련은 주원료 정광을 배소→조액→전해→주조공정을 거쳐 99.995% 이상 고순도 아연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아연정광을 약 950℃ 배소로에서 연소시키는 배소 공정에서 황산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황산은 따로 화학 처리를 하면 농약 제조나 타 금속 제련에 활용되는 제품으로 생산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인체와 환경에 유해하다. 아연을 제련하려면 황산 처리 시설을 반드시 갖춰 황산 제품을 생산해내거나 따로 환경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영풍은 지난 20년 동안 1년 단위로 고려아연과 ‘황산취급대행계약’을 맺고 고려아연이 운영하는 울산 울주군 온산제련소 황산 탱크와 파이프라인을 활용해 황산을 온산항으로 운반한 후 수출해왔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올 4월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하면서 수출 길이 막혔고, 황산 처리가 어려워진 만큼 아연 제련도 차질을 빚게 됐다는 것이 영풍 측 입장이다.
영풍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동시다발적으로 원료공동구매 중단, 공동 영업 중단, 서린상사 경영권 장악 등을 진행했고 급기야 황산 취급 대행에 대한 일방적인 거절을 선언했다”며 “이는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오히려 영풍 측에서 계약 종료에 대한 ‘7년의 유예 기간’이라는 비상식적 요구를 했다”며 “중요한 것은 자체 설비를 구축하든 황산을 육상으로 남해·서해로 운송해 수출을 하든 황산 처리 방법은 영풍에게 충분히 있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추후 갈등의 양상도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 제련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이 경쟁자가 된 만큼 양측 간 싸움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며 “법적 갈등이 지속되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장기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