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섀도캐비닛 

키어 스타머 신임 영국 총리가 6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첫 각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FP키어 스타머 신임 영국 총리가 6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첫 각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FP




1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 소속의 키어 스타머 신임 총리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다음날일 5일 취임식을 갖고 곧바로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내각에는 빈민가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부총리 겸 균형발전·주택장관, 흑인 이민자 가정 출신의 외무장관,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 등 화제의 인물들이 많이 발탁됐다. 대부분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노동당 현직 의원들로 ‘그림자 내각’ ‘예비 내각’으로 불리는 섀도캐비닛에 참여해왔다. 이미 영국인들은 누가 어느 부처 장관이 될지 알고 있었던 셈이다.



정권 교체 시점이 일정하지 않은 내각책임제 국가인 영국에서는 1876년부터 야당이 정권 교체에 대비해 섀도캐비닛을 가동해왔다. 노동당 의회위원회, 보수당 고문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무엇보다 당수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스타머 신임 총리의 경우 인권변호사, 영국 왕립 검찰청장을 거쳐 2020년부터 노동당 당수로서 경제 성장과 국방력 강화를 강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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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에서는 내각의 현직 장관과 섀도캐비닛 책임자 간에 열띤 정책 공방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야당의 섀도캐비닛에 충실히 정보를 제공한다. 자연스레 야당도 여당과 연대 책임을 지고 합리적 비판과 대안 제시에 나선다. 여야를 떠나 책임 정치가 자리잡은 것이다. 섀도캐비닛은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아직 확고히 정착돼 있지는 않지만 야당에 ‘내일의 내각’이 존재한다.

섀도캐비닛은 여야의 사생결단식 싸움에 매몰된 우리 정치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잘못 운영될 경우 ‘대화와 타협’보다는 ‘모 아니면 도’식의 극한 대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은 쪽은 권력을 독점하려 하고 야당은 정책 대결보다 정권 흠집 내기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야당도 국정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책임정치에 나서지 않으면 재집권하더라도 극한 대결 구도에 갇혀 성공하기 힘들다. 우리 야당도 섀도캐비닛을 구성한다는 생각으로 미래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정책 경쟁을 펼쳐야 한다.

고광본 논설위원·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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