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출간된 ‘내러티브&넘버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기업 가치평가의 석학’이라고 불리는 애쉬워스 다모다란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저술한 것으로, 기업의 가치 측정에 어떻게 하면 내러티브(성장성 등의 스토리)를 넘버스(밸류에이션에 관한 숫자)로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히 현재의 수익이나 자산가치가 아닌 미래의 성장성을 포함한 정성적 요소를 체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은 현실의 주식투자에서 승률을 높이려면 바로 스토리와 숫자, 두 가지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식투자의 대가들은 대부분 이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스토리에만 너무 치중하면 버블에 휩쓸려서 크게 낭패를 볼 위험이 있고 역으로 숫자에만 집중하면 그야말로 소위 ‘담배꽁초 투자’ 수준의 작은 성과 밖에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스토리가 가진 위험성을 숫자를 통해서 보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실 스토리는 경제나 경영학보다는 철학이나 역사학 같은 인문학에 근접한 영역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지식에 기반한 통찰력을 통해서 현상을 단순화시키고 이를 하나의 큰 줄기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의외의 변수로 인해 틀어질 수도 있고, 전개 과정에서 인내를 시험하는 교란 요인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수시로 숫자 분석을 통해 스토리를 수정하고 판단할 역량이 없는 사람은 장기 투자가 불가능하다.
통상 주식시장이 활황이고 특히 성장주 장세가 전개될 때에는 숫자에 입각한 판단의 중요성이 간과되기 쉽지만, 장세가 바뀌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스토리가 주가에 별로 반영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의심만 크게 증폭된다. 기업과 시장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많아져도 바로 이 문제가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펀드매니저라고 불리는 전문 투자자가 대다수의 개인투자자와 다른 점은 스토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숫자로 검증하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판단의 정확성을 최대한 높이려 하는데 펀드매니저간 수익률 차이도 바로 그 성공률에 따라 좌우된다.
물론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과거보다 펀드매니저의 판단 적중률이 떨어졌고, 펀드 투자의 상대적인 고비용 구조까지 감안하면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한 패시브 상품에 비해서 펀드가 투자 수단으로서의 매력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토리에만 의존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직접 투자 성공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작년에 크게 각광받았던 2차전지 테마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금은 투자자들에게 국내 증시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는 상태이지만, 상황이 바뀐다면 주식형 펀드도 투자 대상으로 충분히 고려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