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더딘 법령 제·개정 속도 때문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첨단 신사업 9개가 내년 상반기까지 ‘임시 허가’ 딱지를 달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대 변화와 기술 발전에 뒤처진 법·제도가 첨단 신산업과 새로운 ICT 서비스의 태동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증특례를 받아 신산업을 추진 중인 기업 과제는 지난달 28일 기준 총 161개로, 이 중 9개가 내년 6월 말까지 특례 기간(4년)이 종료된다. 하지만 이들 사업 모두 아직도 관련 규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일례로 우아한형제들의 실내·외 자율주행 배달 로봇 사업의 경우 로봇이 촬영한 영상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개인정보보호법이 개정돼야 한다. 이들 사업은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례 기간이 종료되면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을 포기하고 사업을 접거나 임시 허가를 받아 사업하면서 법령 정비를 기다려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신규 사업자가 현행 법령상 규제를 피해 최대 4년간 시장에 우선 상품·서비스를 출시해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그 사이 법령을 정비해 규제를 풀어준다는 취지지만 기간 내 규제 해소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례 기간이 끝난다고 해도 임시 허가를 통해 사업을 지속할 수는 있지만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투자 확보가 어려워지는 등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임시 허가 전환을 앞둔 한 기업 대표는 “투자 논의를 진행해도 ‘규제 해소가 되면 투자하겠다’며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5년 전 처음 시행한 ICT 규제 샌드박스의 특례 기간이 최대 4년인 탓에 앞으로 기간 만료가 도래하는 과제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22대 국회 역시 여야 간 정쟁이 지속될 경우 법 개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고, 부처 간 이해관계도 해소하기가 쉽지 않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제 샌드박스에 포함된 사업이 많다는 것은 불합리한 법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라며 “투자한 비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좀비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법·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